오피니언 문창극칼럼

11월의 추억과 시대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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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독일 뮌헨에서 양국 인사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독 포럼이 지난주 열렸다. 정치 분야에서 독일은 테오 좀머 ‘디 차이트’지 전 발행인이 ‘대연정 하의 독일 국내 정치’를 , 한국은 본인이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한국 정치’를 맡았다. 그 요지를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한다.

“12월 대선에 대해 두 견해가 있다. 한쪽은 두 달 전 한나라당 경선 때 선거는 이미 끝났다고 주장한다. 이명박 후보의 50%를 넘는 지지 때문이다. 다른 쪽은 선거는 아직 두 달이나 남았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한국 정치에서 2개월은 독일 같은 나라의 2년에 해당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 그 근거는 ‘11월의 추억’ 때문이다. 지난 두 번의 대선은 11월에 이변이 났다. 1997년 DJP 연합,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판세를 단숨에 역전시켰다. 이번도 11월의 추억은 살아 있다.

선거가 이미 끝났다는 쪽은 그 근거로 ‘시대 정신(Zeitgeist)’을 말한다. 선거에는 시대정신이 항상 반영된다. 프랑스 사르코지, 독일 메르켈도 시대정신의 변화에 힘입어 집권했다. 한국도 시대정신에 따라 정치세력이 교체되어 왔다. 80달러의 후진국에서 2만 달러 시대로 고속성장한 한국은 그 과정에서 여러 부정적 요소들이 쌓였다. 국민들은 변화를 바랐으며 그런 시대적 요구가 정치 주도권을 바꿨다. 관료·기업인·군부 중심의 산업화 세력 대신 지난 10년간은 민주화 세력이 정치를 주도했다. 그들은 국정운영을 진보좌파 방향으로 바꾸었다. 경제에서는 성장 대신 분배, 일보다는 복지, 기업보다 정부 주도, 작은 정부 대신 큰 정부를 택했다. 그 당연한 결과이지만 경제가 어려워졌다. 일자리가 늘지 않아 대졸자는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집값이 올라 내 집 꿈은 멀어졌다. 평등주의로 교육도 무너졌다. 사람도 성장할 때를 놓치면 더 이상 크지 못하듯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졌다. 통일외교 정책에서도 민주화세력은 반공 친미에서 친북 반미로 노선을 바꾸었다. 그러나 북한은 핵실험을 했으며, 반미의 부추김은 안보 위기의식을 불러 왔다. 반면 선거 때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지역감정은 점차 완화됐다. 10년 집권으로 호남의 한이 어느 정도 풀려 가기 때문이다. 야당후보에 대한 50% 이상의 지지는 이런 시대정신의 변화 때문이다. 한국민은 이제 민주화를 넘어 또 다른 변화를 바라고 있다.

그럼에도 ‘11월의 추억’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조건은 세 가지다. 첫째 여권의 후보 단일화 성공 여부다. 단일화가 힘을 받으려면 그 대상자들의 지지율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동영 후보를 제외한 타후보의 지지율은 미미하다. 앞으로 그 상승 수준에 따라 단일화 성공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둘째 이명박 후보가 붕괴하는 경우다. 재산 문제 등이 다시 제기되어 치명상이 될 때다. 만일 현재와 같은 지지율이 유지된다면 그에 대한 네거티브 캠페인은 먹히지 않을 것이다. 새로 등장할 권력 중심으로 선거가 빨려들기 때문이다. 반면 교만이 모든 실패의 씨앗이듯 이는 부정적인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당선도 되기 전에 벌써 그에 대해 ‘살아 있는 권력’이 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런 비판이 확산되면 ‘11월의 추억’은 되살아날 것이다. 셋째 테러의 위협이다. 이런 사태가 온다면 선거는 판 자체가 깨질 위험이 있다.

그렇다면 ‘11월의 추억’과 ‘시대정신’ 중 어느 쪽이 현실성이 높을까. 한국의 미래와 연관시켜 볼 때 나는 시대정신 쪽을 택할 수밖에 없다. 특히 ‘11월의 추억’은 정치공학(Political Engineering)을 전제하고 있다. 자의적인 후보조정은 시대흐름을 왜곡시키며 그것은 민주주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독일 인사들은 이명박 후보가 당선될 경우 한국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에 관심이 높았다. “지금까지 한국 대통령은 군인 또는 직업정치인이었다. 반면 그는 민간 CEO 출신이다. 때문에 한국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리더십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방향은 실용적·실천적·목표지향적이 될 것이다. 반면 회사에서처럼 모든 결정을 독점하는 독선적 리더십이 될 위험도 높다. 경제와 통일외교 문제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문창극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