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을가다>5.華川 民統線구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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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철원서 김화를 거쳐 화천길로 들어서자 산악이 갑자기 높고 험해지면서 방문자를 내려다보는 듯한 위압감에 몸과 마음이 움츠러드는 느낌을 어쩌지 못한다.
전문 산악인들은 道界나 郡界등 경계지점을 넘어설 때마다 달라지는 이쪽 산과 저쪽 산의 느낌차이를 구별할수 있다고 한다.
철원.김화와 화천은 郡界일뿐인데도 아마추어에게 산세의 다름이금세 느껴진다.
알고보니 태백산맥의 줄기가 화천군의 동쪽을 위아래로 가로지르며 지나가는 때문이었다.
그러나 민통선 안 남방한계선 철책지역인 화천읍 수상리 환재골에 접어들면서는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에 빠져 긴장감도 잠시 잊게 된다.
검문소 통과후 환재골에 이르는 민통선 지역엔 민간인이 한 사람도 없다.
다른 분단선 주변엔 그래도 戰前부터 살던 부락.주민들이 더러눈에 띄었으나 이곳은 워낙 산이 높고 계곡이 깊기 때문인듯 하다. 인적 끊긴 계곡과 산허리를 따라 오솔길과 같은 비포장 작전도로를 급경사와 급커브를 그리며 40분쯤 달렸을까.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면서 제법 큰 강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동행한 안내장교가 북한강이라고 귀띔한다.
험한 산만 보고 달리다 예상못했던 강물을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고 한결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강물이 거울같이 맑아 강상에 비친 검푸른 산그림자와 새털구름이 너무 선명하다.
직선으로 뻗은 강줄기를 따라 1㎞가량 올라가자 오래전에 지었던 흑룡장벽이라는 철교가 초라하게 남아있고 경계병이 철교 중앙을 지키고 있는데 여기가 남방한계선 철책이다.
철교는 또한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회양을 지난 금강산물이 남한으로 유입되는 최초의 지점이기도 하다.
흑룡장벽 아래쪽 강물이름은 북한강이고 위쪽의 북한 지역 강물이름은 금강천이다.
발원지도 하나고 같은 계곡,같은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의 이름이 철책을 사이에 두고 사뭇 달라 분단의 아픔을 새삼 맛보게된다. 사람 목소리외에 적막을 깨는 것은 산새 울음과 한밤의 동물소리뿐이다.
『너구리.고라니는 흔히 보는 짐승들이고 가끔 뾰족한 어금니의멧돼지가 초소 근처를 어슬렁거리기도 하지요.』 첩첩산중 관측소에서 근무중인 朴인규대위는 『비무장지대안 비스듬한 암벽 주변에터를 잡은 희귀한 山羊 두마리는 이젠 군인들의 친구가 됐다』고했다. 북한강 유입지점에서 북쪽 15㎞ 떨어진 금강천엔 임남댐이 있고 남쪽 11㎞ 떨어진 곳엔 평화의 댐이 건설돼 있다.
임남댐은 북한이 남한 水功을 위해 만들고 있다고 주장됐던 금강산댐의 북한 이름으로 그로부터 26㎞ 아래쪽에 방어용 평화의댐을 지었던 것.
어떻게 강폭 1백70m,평균 수심 12m(추정)의 좁은 강물의 임남댐이 그 넓은 한강을 범람시 키고 여의도 63빌딩까지 물이 차오르게 만들것이라는 상상이 나왔는지 웃음이 나왔다.
흑룡철교와 연해 직벽에 가까운 산등성을 따라 설치된 철책을 타고 꼭대기에 오르면 우리측 관측초소가 있다.
이쪽에선 비무장지대에 들어와 있는 북한의 관측초소(GP)가 어슴푸레 보인다.
우리 병사들은 4월과 7월 사이에 세차례에 걸쳐 인민군의 구타현장을 포대경을 통해 목격했다며 웃는다.
20여명의 북한군이 수시로 격술(태권도)훈련을 하는데 가끔 선임자가 10여명을 「엎드려 뻗쳐」 시켜놓고 몽둥이질을 한다는것이다. 이곳에서 다리를 건너 3㎞쯤 밑으로 내려가자 양의대라고 쓴 장승 두개가 눈을 부릅뜨고 불청객을 맞는다.
마을이 있던 이곳은 전쟁으로 집터의 흔적조차 찾기 힘들지만 우리 군이 당시 희생된 주민들을 기리고 후대에 마을이 있었음을알리 기 위해 장승 두개를 세워 두었다는 설명이다.
전쟁의 생채기가 강토 곳곳에 너무 깊이 많이 남아있다는게 새삼 몸서리쳐 진다.
부대를 다시 빠져 나오는 비포장길 한복판에 까마귀 한마리가 너부러져 있었다.
심산유곡의 전깃줄은 잘 보이지 않아 산새가 날아가다 걸려 흔히 그렇게 죽어간다는 안내장교의 설명이다.
글 :全榮基기자 사진:이지누(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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