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성택시 14인의 장애인 기사 내 힘으로 선다 … '자활의 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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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택시에서 일하는 장애인 기사인 김규태·이정권·정형용·김순자·조대연씨(왼쪽부터)가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변선구 기자]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한 덕성택시㈜의 기사 정형용(40)씨는 하루 10시간 가까이 핸들을 잡고 일한다. 손님에게 행선지를 묻고 요금을 받는 모습은 여느 택시기사와 다를 바 없지만 그는 목발이 없으면 걷기도 힘든 중증 장애인(장애2급)이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됐다. 그가 택시기사가 된 것은 2006년 초부터다. 자리에 앉아 일할 수 있는 금속 세공 일을 배웠지만, 이마저도 나이가 들면서 힘에 부쳤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던 그는 우연히 '장애인도 택시기사가 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집 근처 택시회사를 찾았다.

◆장애인 기사의 눈물과 꿈=택시기사로 변신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우선 길눈이 어두웠다. 집과 공장 만을 오갔던 그에게 서울 시내는 미로 같았다. 내비게이션이 있지만 주택가 골목길을 헤맬 때면 손님의 눈치가 보였다. 다짜고짜 '재수없다'고 욕을 퍼붓는 취객도 있다. 운전석 옆에 놓인 목발을 본 손님 중 일부는 목적지에 닿기가 무섭게 요금을 내지 않고 줄행랑을 치기도 한다. 근무 중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도 큰 어려움이다. 그러나 택시기사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손님 중에는 '장하다'며 요금을 후하게 주거나 박수를 쳐 주시는 분도 있거든요."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된 것도 유쾌한 변화다. 정씨에게 택시는 다른 사람과 만나고 소통하는 공간이다. 자신처럼 몸이 불편한 손님을 만날 때면 "기죽지 말고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살아라"고 조언한다. 우울한 기분이 들 때면 남산순환도로를 마음껏 달리며 스트레스도 푼다. 한 달에 200시간 넘게 일해야 하는 고된 생활이지만 정씨에게는 꿈이 있다.

"회사에서 3년 무사고 경력을 쌓은 다음 개인택시 면허를 살 겁니다."

그가 몸담은 회사에서도 벌써 네 사람의 선배가 개인택시 면허를 구입해 독립했다. 정씨는 "개인택시가 생기면 늙어서도 돈을 벌고, 마음껏 돌아다닐 수도 있지 않느냐"며 "죽는 날까지 내 힘으로 돈을 벌고 싶다"고 말했다.

◆장애인 위한 회사 측 배려도=덕성택시에는 모두 14명의 장애인 기사가 있다. 전체 기사(170여 명)의 10%에 가깝다. 택시업계에 불어 닥친 불경기와 그에 따른 인력난이 계기가 됐다. 이 회사에선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이나, 의수(義手)를 낀 이도 어엿한 기사다. 회사 측도 장애인을 맞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우선 두 손으로 차를 몰 수 있도록 차량 9대를 개조했다. 개조 비용은 전액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지원받았다.

또 오일체크나 타이어 점검 등 기본 정비는 물론 운행 중 타이어펑크 등의 일이 생기면 회사 정비반이 현장으로 출동해 이들을 돕는다. 회사 건물 내 화장실 같은 시설도 이용하기 편하도록 계단과 문턱을 낮췄다. 회사는 대신 인력난도 줄이고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분기마다 지원금도 받는다. 회사 권현진(46) 상무는 21일 "장애인 기사들의 우수한 근무 태도와 성적 등에 만족하는 데다가 지원금까지 받을 수 있어 회사 운영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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