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실크 넥타이로 30년 승부수 해외 명품에도 안 밀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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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25일 창립 30주년을 맞는 클리포드는 넥타이 업체로 출발했다. 지금은 드레스셔츠도 만들어 파는 등 남성 토털 브랜드로 성장했고, 셔츠 판매 액수가 넥타이의 두 배가 넘지만 여전히 넥타이에서 기업의 정체성을 찾는다. 이 회사를 창업한 김두식(56·사진) 회장은 업계에선 ‘넥타이의 고급화’를 이룬 주인공으로 통한다.

김 회장은 실크 수출을 전문으로 하던 신성무역에서 근무하다 실크 넥타이에 빠져 넥타이 회사 아스날로 직장을 옮겼다. 이때 국내 넥타이 시장은 90% 이상이 폴리에스테르 소재로 만든 제품이었다. 그는 “무역회사에서 일을 하며 일본에 드나들다 실크 넥타이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며 “실크 같은 고급 소재는 엄두도 못 낼 시절이었지만 조만간 넥타이에 고급화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하고 승부를 걸기로 했다”고 말했다.

 1977년 그는 서울 소공동 지하상가에 두 평 남짓한 사무실을 얻어 실크 넥타이 회사를 창업했다. 그렇지만 국내에 실크 넥타이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일제시대 때 이 일을 했던 사람을 찾아내 작업을 시작했는데 수작업으로 만들다 보니 하루 생산량이 50개도 안 됐어요.” 이렇게 만든 넥타이를 미도파와 신세계 백화점 라벨을 붙여 백화점에 납품했다. 다른 넥타이보다 5배 정도 비쌌지만 고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실크 넥타이’를 고집한 덕에 기존 업체와의 마찰도 피할 수 있었다.

 국내 시장에 안주하지 않았다. 사업 초기부터 해외로 눈을 돌렸다. 넥타이 샘플을 들고 크리스티앙 디오르 등 유럽의 해외 명품 업체에 무작정 찾아갔다. 업체의 연락처는 전화번호부를 뒤져 알아냈다. 해외 유명 업체들은 품질은 인정했지만 한국과 같은 작은 나라에서 제대로 생산할지 고개를 갸웃하며 거절했다.

 하지만 기회가 왔다. 82년 미국 카운테스마라와 맺은 기술제휴가 그것이다. 동포 사업가를 통해 만난 카운테스마라 부사장이 클리포드의 기술력을 인정해 납품을 받겠다고 했다. 이로써 사업은 큰 전환점을 맞는다. ‘카운테스마라가 품질을 알아준 회사’로 알려지자 세계적 브랜드들에서도 속속 기술제휴 건의가 들어왔다. 83년에는 프랑스 찰스주르당, 이듬해에는 프랑스 피에르 카르뎅과 기술제휴를 했다. 수출은 쑥쑥 늘었다. 이런 성장세에 힘입어 93년 업계 최초로 500만불 수출탑을 받았다.

 몇 년 동안은 그야말로 잘나갔다. 이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클리포드가 미국 단자라인터내셔널에 납품할 때 단자라의 넥타이가 승승장구하자 경쟁사가 그에게 납품을 제안했다. 그는 “신의를 지켜야 한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이 업체 관계자는 “단자라인터내셔널만 배려한 불공정한 거래”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처럼 신뢰는 그가 사업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외환위기 때도 이 원칙을 지켰다. 유럽에서 수입하는 물량이 많아 엄청난 환차손을 입게 됐지만 이를 감수하면서도 대금을 결제해 줬다. 당시 한국 수입 업체 중에는 주문하고도 환율이 오르자 연락을 끊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그는 “손해를 봤지만 2년 만에 외환위기가 끝나면서 전화위복이 됐다”고 말한다. 믿을 수 있는 회사라는 인식을 심어줘 해외 업체들과 거래가 한결 쉬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과 가격 경쟁에서 밀리면서 수출은 줄었다. 주5일제 도입과 남성복의 캐주얼화로 넥타이와 셔츠에 대한 국내 수요도 감소했다. 변화가 필요했다. 김 회장은 명품 시장을 겨냥한 남성 토털 패션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2004년 선보인 자체 브랜드 ‘벨그라비아’가 그 첫 작품이다. 이탈리아에서 납품받는 고품격 브랜드다.

 그는 자신을 일컬어 ‘감각을 파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만큼 고객의 취향과 감성에 맞는 제품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87년 경남 진주 공장에 ‘클리포드 디자인 연구소’를 열고 디자인에 역량을 모으고 있다.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고객별 ‘맞춤 넥타이’를 만들어 선물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클리포드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넥타이와 셔츠 등 비즈니스 옷차림의 스타일을 제안하는 책을 만들어 배포한다. 셔츠와 넥타이는 일하는 남성이 입고 매는 것인 만큼 장소·상황과 형식에 맞는 옷차림이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늘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남성 패션의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자부하는 그는 “앞으로도 무리하지 않고 남성 옷차림의 선진화를 위해 한 분야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글=하현옥,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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