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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74. 미국에서 온 낭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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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필자가 1997년 받은 미국 학술원 회원증.

1997년 10월께다. KAIST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책상을 정리하고 있을 때다. 그 당시 미국 UC얼바인대학으로 오는 우편물은 그곳 비서가 챙겨 한국으로 보내주고 있었다. 책상에 수북히 쌓여 있는 우편물을 하나 둘씩 개봉하면서 불필요한 것들을 쓰레기통에 버려나갔다.

하나의 편지 봉투를 열었을 때다. 이상한 느낌이 드는 편지 한장을 보았다. 그 속에는 내가 미국 학술원 회원이 됐다는 통지서가 들어 있었다. 미국 학술원 회원은 세계 석학들의 모임이다. 그런 곳에 내가 회원이 됐다는 소식을 듣자 가슴이 뛰었다. KAIST에서 초빙석좌교수조차 재계약을 해주지 않아 몹시 속이 상해 있는 터에 그런 통보를 받고 보니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때 나이 61세였다. 내가 그동안 많은 상을 받고, 여러 곳의 회원이 되었지만 이렇게 기쁜 적은 없었다.

미국 학술원 회원은 세계적인 연구 성과가 없으면 되지 않는다. 나도 오랫동안 그곳의 회원이 되기를 갈망했었다. 그러나 누가 추천해주지 않았었다. 그곳은 회원만이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회원들은 자신이 추천하려는 사람이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고 판단했을 때 추천한다. 친한 사람끼리 술 한잔 사주면 추천해주고 그러는 곳이 아니다. 미국에서 학술원 회원이 되면 노벨상 후보자 1차군에 포함된다고 할 정도로 권위가 있는 곳이다.

회원은 3차에 걸친 심사를 거쳐 뽑는다. 어느 한 분야를 세계적으로 개척한 사람이 대상이다. 나는 CT, PET, MRI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선두 그룹에 서서 연구를 주도해 왔었다. 그리고 PET는 명실공히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나는 미국 러커스대학에 있는 쉡 교수가 추천해줬다. 그는 내가 UCLA에서 CT를 개발하고 나서 국제CT심포지엄을 열 때 처음 만났다. 그는 그때 벨연구소에 있었다. 내가 아는 친구를 초청을 했는데 쉡 박사도 CT의 수학적 해법을 연구하니 같이 가면 어떻겠느냐고 해 그러라고 했었다. 그게 그와의 첫 인연이다. 내가 1974년 CT 특집 학술논문집을 만들 때 그의 수학적 해법을 담은 프로그램 전문을 싣자고 했다. 그 덕분에 그가 유명해졌다. 다른 과학자들이 그 프로그램을 돌려 CT를 연구한 것은 물론이다. 그가 나보다 훨씬 먼저 미국 학술원 회원이 된 것도 그 프로그램 덕이다. 그런 그가 여러 해가 지난 다음에 나를 추천했다.

그해에 광주과기원에 있던 백운출 교수도 학술원 회원이 됐다. 백 교수는 나와 분야가 달라 발표 일자가 달랐다. 백 교수는 지금 미국에 살고 있다. 한국에는 지금도 미국 학술원 정회원 회원이 백 교수가 미국으로 다시 간 후 나 이외에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미국 학술원은 간혹 정치적인 이유로 외국 부회원을 뽑는다. 아마 한두명의 외국 부회원은 있지만, 정식 정회원은 현재 나만이 있을 뿐이다.

나의 명함에는 현직과 함께 미국 학술원 회원을 뜻하는 ‘Member of The National Academy, USA’라는 것을 인쇄해 다닌다. 그만큼 나에겐 큰 훈장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명함을 파고 다니는 과학자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조장희<가천의과학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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