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투데이

남북한 화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으로 한국전쟁 종결과 남북 화합 논의가 진일보했다. 그렇다고 통일에 성큼 다가선 건 아니다. 근대사에서 보듯 국가란 통일보다 분단·분열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대만과 중국도 경제적으론 밀월상태지만, 정치적으론 여전히 냉랭한 관계다.

이번에 노 대통령은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었는데, 대만인들은 여전히 인천·후쿠오카·홍콩 등을 거쳐 중국 땅을 밟는다. 동·서 간 이데올로기 대립을 벌였던 독일은 소련의 혼란 와중에 비교적 쉽게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서독 주민들은 통일 직후 5년간 총 5%의 세금을 추가로 냈으며, 동독의 사회기반시설 구축과 정비, 실업 보상 등을 위한 막대한 예산을 부담해야 했다. 오늘날 동독 출신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 탄생에서 알 수 있듯이 동서 화합은 상당히 이뤄졌지만 갈등이 없지는 않다. 오랜 세월 형성된 가치관의 차이 때문이다. 남북 통일에서도 이런 이데올로기와 가치관의 차이가 오랜 기간 부작용으로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이 통일의 전 단계로 인적·물적 교류를 자유화하면 어떻게 될까. 북한의 전체주의적 통합기구는 당연히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련과 유고연방, 루마니아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람의 이동이 자유롭게 되면, 즉 정보가 자유롭게 교류되면 전체주의 국가는 운영 자체가 곤란해진다.

이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분명치 않다.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6자회담에서도 이에 관한 논의는 없었던 것 같다. 이는 냉전시대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열렸던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회담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이 중점적으로 논의됐고, 교역·체제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 소련은 붕괴해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바뀌었다. 체제와 지도자가 모두 바뀌었고, 과거 미·소 정상 간에 무슨 논의가 있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골머리를 앓는 게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그의 최종 목표는 한국은 물론, 세계 모든 국가와 우호관계를 맺는 것일 게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상황을 진전시키려 하면, 엄격히 통제해 온 정보가 국민에게 공개될 것이고, 이는 곧 동독의 체제 붕괴와 같은 악몽으로 이어질 것이다. 남한의 원조를 받으며 제한된 지역에 공단을 건설하면서 경제발전을 이루는 시나리오가 현재로선 그가 허용할 수 있는 한계일 것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는 2004년 5월 두 번째 방북 때 ‘리비아 방식’을 제안했으나 김 위원장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나는 고이즈미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본다. 리비아는 팬암기 사건(270명 사망)에 26억 달러를 보상했고, UTA·프랑스항공기 폭파사건(170명 사망) 유족들에게 1억7000만 달러를 지급했다. 한 명당 평균 652만 달러나 된다. 북한이 대한항공기 폭파사건(115명 사망)이나 아웅산 사건(17명 사망), 그리고 500여 명으로 추정되는 한·일 납치 피해자 가족들에게 범죄를 인정하고 사죄·보상하려면 리비아 방식으로는 41억 달러의 돈이 필요하다. 산유국인 리비아와 달리 북한은 이런 거액을 지급할 능력이 전혀 없다. 물론 북한이 진실을 밝히고 정식으로 사죄한다면, 한국이나 일본 모두 금전적 배상을 요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런 사실이 주민 앞에 명백히 드러났을 때 ‘장군님’은 지도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북한이 현 체제에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가들과 ‘진정한 화합’을 이룰 수 있을까. 이는 결국 북한 주민이 결정할 문제다. 하지만 그 열쇠를 쥐고 있는 노 대통령이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앞으로 남북 화합을 추진해나갈 것인지도 관심을 끈다.

오마에 겐이치 비즈니스 브레이크스루 대학원대학 학장

정리=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