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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미래] '3차원 프린터'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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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미국 3D 시스템에서 일하고 있는 러빈 머즐리 연구원은 자신의 머그컵이 자동차 안의 컵홀더에 딱 맞지 않아 덜렁거리고 음료수가 쏟아지자 자신의 사무실에서 손쉽게 문제를 해결했다. 1시간여 만에 뚝딱 3차원 프린터로 머그컵에 맞는 컵 홀더를 직접 찍어낸 것이다. 컵 홀더뿐 아니라 머그컵도 마음만 먹으면 즉석에서 제작할 수 있다.

종이에 문서를 찍는 잉크젯과 레이저 프린터 시대에 이어 '3차원 프린터 시대'가 오고 있다. 컴퓨터 화면 속에 있는 3차원 물체를 그대로 복제해 실제로 만들어내는 제품이 3차원 프린터다.

3차원 프린터는 1990년대부터 개발됐지만 그동안엔 덩치가 크고, 고가인데다 사용법도 불편했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불꽃이 튀고 크기가 커 공장 한구석에 앉아 있던 3차원 입체 프린터가 사무실 안으로 옮겨오는 추세다.

국내에 이스라엘 제품을 수입, 판매하는 시스옵테크놀로지 김종호 사장은 "미래에는 가정집 책상에 지금의 레이저 프린터처럼 3차원 프린터를 놓고 쓸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장난감을 주문해 자신의 집에 있는 3차원 프린터로 뽑아 갖고 놀 수 있게 될 수도 있다. 이 때쯤 되면 길거리에서 스티커 사진을 뽑는 대신, 자신의 3차원 모형을 인형으로 뽑아 애인간에 서로 선물로 교환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양동열 교수는 "3차원 프린팅 기술의 초점은 얼마나 빨리, 얼마나 정확하게 찍을 수 있는 가에 있다"고 말한다. 양교수는 지난해 과기부가 지원한 중점 국가연구개발 사업으로 국내 기술로 만든 3차원 프린터를 완성했다. 스티로폼을 재료로 이용하기 때문에 기존 해외의 3차원 프린터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싼 값에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 양교수는 이 제품을 이용해 유명 수석가가 부탁한 1억원짜리 수석(壽石)의 복제 모형을 40분 만에 뚝딱 만들어 주었다. 재료값도 2만원밖에 들지 않았다.

이 제품은 벤처기업 메닉스에 기술이전돼 상용 제품이 나오고 있다. 국내 10여개 대학에 교육용으로 보급돼 사용 중이다. 메닉스 기술연구소 박승교 연구소장은 "외국 장비는 0.1㎜ 이하의 얇은 층을 계속 쌓아 3차원 형상을 만들어내는데 비해 국내 제품은 3㎜ 정도의 두께를 지닌 스티로폼을 한층 한층 쌓으므로 완성되는 속도가 10배 이상 빠르다"고 말했다. 그대신 정밀도는 약간 떨어진다는 평가다.

양교수는 "A3용지 단면 크기의 제품을 찍어내던 3차원 프린터를 가로 1m, 세로 70㎝ 크기의 A0용지 단면 크기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게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큰 3차원 프린터로는 영화 세트, 홍보용 3차원 모델 등을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다.

한편으론 더 크게 더 빨리 만드는 반면, 한편으론 더 작게 정밀하게 만드는 것도 연구추세다.

작게 만드는 연구는 수십나노 크기의 초소형 단위에서 이뤄지고 있다. 양 교수팀은 올해 안에는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의 정교한 복제품을 10㎛(마이크로미터.1마이크로미터는 1㎜의 1천분의 1)로 제작, 프랑스 박물관에 기증할 계획이다. 작게 만드는 입체 모형은 새로운 개념의 반도체 설계 등에 응용할 수 있다.

현재 3차원 프린터는 대부분 산업 현장에서 쓴다. 국내에서도 매년 50~60대가 새로 수입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산 아디다스 신발 연구소에서는 디자이너가 최신 유행의 신형 신발을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설계해 파일로 만든다. 이 파일을 3차원 프린터로 뽑아내면 새 디자인이 만족스러운지, 이상한 곳이 없는 지를 금방 알 수 있게 된다. 이상한 곳이 있으면 컴퓨터의 3차원 디자인 파일을 금방 손보면 된다.

대우종합기계에서 신형 중장비에 맞는 핸들을 디자인할 때도 일단 3차원 프린터로 디자인해 찍어내본다. 이렇게 나온 플라스틱 핸들을 신형 중장비에 붙여 이것 저것 성능과 외관의 문제점을 따져보고 고친다.

재료로는 KAIST의 경우처럼 스티로폼이 쓰이는 경우도 있고, 자외선을 쬐면 굳는 액체 플라스틱을 쓰는 경우, 녹말가루를 쓰는 경우, 석회를 쓰는 경우 등 다양하다.

생체물질을 찍어내거나 우주에서 부품을 직접 찍어내 조달하는 쪽으로도 미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연구되고 있지만 아직 상용화까지는 긴 기간이 남아 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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