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41세 유창혁의 패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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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16강전 하이라이트>
○·유창혁 9단 ●·어영호 6단

 21세의 허영호 6단은 지난해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우승자다. 이번 삼성화재배 전야제 때 지명 순서 1번을 뽑았는데 고심 끝에 일본의 기성이자 서열 1위인 야마시타 게이고 9단을 선택했다. ‘신예의 기백도 잃지 않으면서 이길 가능성도 꽤 높은 상대’라고 판단한 것이다. 16명 중 첫 번째로 지명된 야마시타 게이고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고 결국 일본은 야마시타를 포함해 전원이 1차전에서 탈락했다. 일본 바둑의 서글픈 현실을 보여 주는 대목이었다. 유창혁 9단은 중국의 2인자 쿵제 7단의 지명을 받았으나 예상을 깨고 완승으로 2회전에 올랐다.

 장면도=초반에 뒤진 유창혁 9단이 최대한 배짱으로 버티고 있는 바둑이다. 허영호 5단의 83은 A를 엿보는 수. 물론 백 B의 반격이 있어 A는 불가하지만 C 언저리가 모두 선수라서 중앙 백은 서둘러 84로 달아나야 한다. 바로 이 장면이 이 판의 소리 없는 승부처였다.

 실전에서 허영호는 85로 평온하게 응수하고 백도 86으로 살게 됐는데 85로 좌변 백 대마를 즉결 처분할 수는 없었을까.

 흑이 ‘참고도’1에 젖히면 대마는 두 집이 없다. 따라서 유일한 활로는 백 2로 씌워 흑 대마를 거꾸로 잡아 버리는 것. 흑은 3에 붙여 달아나게 되고 백은 10까지 포위망을 친다. 언뜻 보면 흑이 불리한 싸움으로 보인다. 하나 흑에겐 D로 붙여 돌파하는 수단도 있어 백을 잡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허영호는 그러나 형세가 좋다고 보고 85로 참았다. 이후 벌어지는 기나긴 악몽을 생각하면 후회스러운 대목이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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