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튀는 사극' 의상도 옛날 복장과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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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사극의 패션도 진화하고 있다. 달라진 시청자의 눈높이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색상이다. 이제 울긋불긋한 원색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화사한 파스텔톤이 인기다. 또 고증보다 해석에 방점을 찍는 추세다. 소재는 과거이되 얘기는 현재인 요즘 사극의 트렌드와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이산’의 의상을 만든 이혜란(MBC미술센터 의상팀) 과장은 “‘허준(1999~2000)’에서부터 사극 의상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이전에는 빨강 등 원색을 주로 사용했지만 ‘허준’부터는 파스텔톤을 애용한다”고 말했다.

◆세련된 파스텔톤이 대세=이 과장은 “파스텔톤 의상은 화면을 훨씬 밝게 만들어 준다”며 “‘이산’에서 송연(한지민·사진<上>)의 옷은 푸른색에 보라색이 도는 빛깔로 요즘 유행하는 색채와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예전 사극이 빨강·파랑 등 원색을 강렬하게 대비시켰다면 최근엔 채도를 낮춰 은은한 느낌이 나는 색상을 즐겨 사용한다는 것이다.

‘태왕사신기’도 마찬가지다. 수지니(이지아)를 비롯한 등장인물 대부분의 옷은 채도가 낮다. 다만 기하(문소리·사진<下>)의 경우, 강한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 검정 바탕에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왕과 나’는 비교적 정통사극에 가까운 의상을 보여주지만 이 역시 색상은 현대화했다. 의상담당 이혜련(SBS아트텍) 부장은 “100% 원색을 쓴 것은 거의 없고 모두 새로 염색한 천으로 옷을 만들었다”며 “대부분 본견(명주실로만 짠 비단) 소재에 고급스러움을 더해 현대 감각을 살렸다”고 말했다.

◆고증 바탕으로 현대화=‘태왕사신기’ 의상은 겉보기엔 옛날 옷 같지만 겹쳐입기에선 현대복을 닮았다. ‘태왕사신기’의 여성들은 저고리 위에 반비를 겹쳐 입는다. 반비는 현대 여성이 즐겨 입는 볼레로(어깨를 덮는 짧은 길이의 여성용 겉옷)와 비슷하다. 이성훈(SBS 아트텍) 디자이너는 “고증에 따르면 고구려 의상에 겹쳐 입는 형식이 많다”며 “반비의 길이를 더 짧게 만들어 볼레로처럼 보이게 했다”고 말했다. 여성복 미샤의 노소영 홍보팀장은 “이지아의 중성적 의상은 트렌디 드라마 ‘커피 프린스’에서 윤은혜가 입은 것과 비슷하다”며 “셔츠와 조끼를 겹쳐 입는 ‘레이어드 룩’은 올 가을·겨울에도 유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옷 길이의 변화는 ‘이산’에서도 눈에 띈다. 세손 시절의 정조를 연기하는 이서진의 옷은 기존 사극보다 길이가 더 길어서 신발의 발등 부분에 끝자락이 닿을 정도다. ‘왕과 나’에선 풍성한 치마에 짧은 저고리 길이가 돋보인다. 정조의 옷은 “요즘 유행하는 긴 실루엣 옷처럼 인물이 더 날씬하고 길어 보이게 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혜란 과장)이고, ‘왕과 나’ 여인네 옷은 “짧은 상의로 하체가 더욱 길어 보이게 만든 것”(이혜련 부장)이다.

◆자세히 보면 또 달라=사극패션의 상상력은 작은 부분에서도 발견된다. ‘왕과 나’ 내시 의상의 옷깃도 그중 하나다. 예컨대 전광렬(조치겸)의 내관복 옷깃은 흰색이 아니라 검붉은색. 이혜련 부장은 “고종 황제 사진을 보면 왕의 옷깃이 흰색뿐만 아니라 파란색 등 여러 가지였다. 바로 그런 점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어린 여자아이가 주로 하는 배씨댕기 머리띠도 ‘변화’의 한 부분이다. ‘이산’에선 송연 등 도화서 다모들이, ‘왕과 나’에선 소화(구혜선)가 배씨댕기를 하고 나온다. 이혜란 과장은 “나이에 조금 안 맞긴 하지만 캐릭터의 성격상 발랄함을 살리기 위해 연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안(童顔)이 인기를 끄는 요즘 추세처럼 등장인물을 어리고 유쾌해 보이게 한 것이다.

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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