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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땅끝에 선 사람들(43) 길남의 손이 그녀의 등을 쓸어내리고 있었다.천천히.어둠과 방파제와 저 멀리에서 비추고 있는 외등을 바라보면서 길남은 화순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듯이 볼을 대고 있었다.
화순이 가만히 길남의 가슴을 밀어내면서,몸을 빼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입술에 그녀가 빠르게 자신의 입술을 대었다가 뗐다. 『이만 우리 돌아가.』 화순이 길남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지금 쯤 날 찾고 있을지도 몰라.』 묵묵히 길남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들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서로의 팔을 서로의 허리에 돌려 감고 어두운 길을 더듬듯이 그들은 걸었다.화순이 물었다.낮게.
『정말 도망칠 생각이야?』 길게 한숨을 내쉬었을 뿐 길남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바람이 조금씩 더 거세어지고 있었다.방파제를 때리고 가는 파도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멀리 경비를 서고 있는 사내가 방파제위를 오락가락 하는 것이 외등에 비치며 희미하게 바라보였다.
그녀가 말했다.
『달이라도 떴으면 좋겠다.』 만월의 밤에는 바다 위의 달빛도욕정의 웃음을 흘린다.바람난 계집처럼 달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그 물결.바다의 살갗에 윤이 흐른다.해변가 마을에서 개들은 더욱 길게 짖고,여자들은 옷을 풀어내리기 위해 허리에 끈을 묶지않는다. 만월의 밤에는 오래 꽃잎을 열지 못하던 동백도 꽃망울을 터뜨리고,서걱거리며 갈대는 하늘을 향해 머리를 쳐든다.바람은 그 위를 하듯이 지나간다.돌아갈 곳이 없는 남자들은 서둘러술에 취하고,비곗살이 낀 작부의 허리라도 베개처럼 푸근 하다.
그러나 하늘에는 달도 없었다.파도소리 뿐,바람 소리뿐.두 사람의 발소리마저 거기 묻혀간다.
화순이 걸음을 멈추었다.마주보며 선 길남의 한손을 잡으며 화순이 말했다.
『정말 가려는 거니?』 『어제 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라고 했잖아.명국이 그 아저씨하고도 다 약속했던 일이야.』 고개를 끄덕이며 화순이 말했다.
『나도,나도 데리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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