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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 합격한 시각장애인 최민석씨 "공부만이 빛이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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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깜깜한 세상. 공부는 빛이었다. 언젠가는 꿈이 이뤄질 거라고, 세상과 부딪칠 때마다 이를 악물었다.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2일 오후. 1급 시각장애인인 최민석(22.서울 개봉동)씨는 곁에서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崔씨는 13세 때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다섯살 때 녹내장 판정을 받은 그는 8년에 걸쳐 병원과 기도원 등을 오가며 온갖 방법을 시도했으나 모두 허사였다.

시력을 잃은 이듬해인 1995년 崔씨는 서울맹학교 초등학교 4학년으로 입학했다. 점자를 익히는 데만 두달이나 걸렸다. 그렇지만 더듬더듬 손으로 읽는 세상에 재미를 붙여갔다. 중학교를 거치면서 1등을 줄곧 도맡았다.

맹인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법대에 가기로 결심했다. "사회에서 소외되는 시각장애인들을 법적으로 돕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일부 선생님마저 "사회가 받아주겠느냐"며 말렸지만 그의 결심을 꺾지는 못했다.

부모님은 그에게 가장 큰 힘이었다. 작은 기계 공장에 다니는 아버지는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달려와 아들에게 책을 읽어줬다. 어머니는 일반인의 참고서.문제집을 싸들고 맹인복지관을 찾아다니며 점자 번역을 부탁했다. 같은 책이라도 점자로 바꿔놓으면 다섯배도 넘게 무거워졌다.

고3이 되자 물리치료 수업이 늘면서 대학 시험공부에 쏟아야 할 시간은 더 빠듯해졌다. 맹인학교의 특성상 주 32시간 수업 중 21시간은 침.마사지.안마 등 물리치료를 의무적으로 배워야 했다. 국어수업은 일주일에 단 2시간, 수학.영어는 1시간이었다. 하루종일 물리치료를 배우고 지쳐 돌아오면 녹음기를 틀어놓고 혼자 공부해야 했다.

점자로 수능을 보는 시각장애인들의 수험 시간은 일반 수험생의 1.5배. 오전 8시에 시작해 오후 9시가 넘어 수능이 끝나자 입에선 단내가 났다고 한다. "시험을 못 치른 것 같아 좌절했다"는 그의 수능성적은 367점. 법대 입학에 장애인 특별전형의 도움이 약간 있었지만 일반 학생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성적이었다.

崔씨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빛이 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임미진 기자<limmijin@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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