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연출노트>정진수 섹스코미디=포르노연극은 잘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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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요즘 같이 푹푹 찌는 무더위 속에 머리를 식힐만한 「꺼리」가없을까.연극의 장르 가운데 「섹스 코미디」(sex comedy)란 것이 있다.음란하고 외설적인 포르 노 연극쯤으 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론 섹스 코미디는 그 이름에 걸맞게 충분히 야한 분위기를 제공하며 상식적 도덕기준을 위협해야 한다.다만 결과는 항상 기성도덕과 타협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같은 섹스 코미디가 우리나라에는 없다.우리나라 어른들은 「섹스」나 「웃음」을 공개적 인간행위로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일까.하여튼 섹스 코미디는 개방물결을 타고 서양에서 수입된 연극장르다.연출가로서 나는 그 선구자 대열에 낀다.『선 인장 꽃』『연인과 타인』『연상의 여자』『누가 누구?』등은 내가 번역.연출했으며 그밖에 『나비처럼 자유롭게』『보잉 보잉』『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을 비롯해 미국을 대표하는 희극작가 닐 사이먼의 작품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대학 교수를 겸한 연출가가 섹스 코미디 따위를 연출하느냐는 주위 근엄한 분들의 비난을 감수하며 내가 간혹 이 장르에 손대는 이유가 없을 수 없다.첫째,재미있기 때문이다.나뿐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단 하룻저녁에 그들의 삶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주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다.단,섹스 코미디는 고도의 성인용 컴퓨터게임 같아서 머리가 나쁘면 즐길 수없다. 둘째,우리나라 사람들의 촌티를 벗기는데 일조하고 싶다는것도 중요 이유다.촌티는 어디서 오는가.도덕은 중무장했으면서 예절(매너 또는 에티켓)은 갖추지 못했을 때,전문지식은 흘러넘쳐도 교양에 가뭄이 들었을 때,심중한 의견은 곧잘 토 로해도 재치있는 농담은 소화하지 못할 때,이럴 때 섹스 코미디는 좋은치료제가 되어준다고 믿는다.
자,이 찌는 더위에 섹스 코미디 한편을 보고 실컷 즐기며 촌티도 좀 벗어보는 것이 어떨까.
〈연출가.성균관大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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