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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중견기업] 유동골뱅이 만든 그 회사 "통조림도 웰빙 식품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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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서울 역삼동에 있는 회사 R&D센터에서 대표 제품 ‘유동골뱅이’를 소개하는 유성물산교역의 강승모(45) 사장. 그는 통조림 제품을 다양화한 뒤 냉동식품 시장에도 진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최정동 기자

유성물산교역 하면 모르는 사람도 유동골뱅이 하면 ‘아하, 그 회사’ 하고 무릎을 친다. 제품 이름이 라디오 광고나 술안주 덕분에 귀에 익은 때문이다. 이제 골뱅이의 대명사로 불리는 매출 400여억원의 중견 통조림 회사지만 1965년 출발은 자그마한 무역회사였다.

창립자인 강순걸(72) 회장은 서울대 법대를 나왔지만 사법시험을 쳐 법조인이 되기보다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로선 ‘첨단’ 서비스 산업이었던 무역업에 손을 댔다. 그래서 나이 서른에 차린 게 홍콩·일본 화교 상인들에게 한약재를 수출하는 이 회사다. 처음엔 번듯한 사무실·창고가 부족해 집에서 한약재를 말리고 포장했다. “말리려고 깔아놓은 한약재로 안방은 늘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장남 강승모(45) 사장은 회상했다.

◆품목 다양화=이렇게 시작한 회사가 40년 넘게 살아남으면서 내실을 키워온 비결은 발 빠른 변신이었다. 인삼을 수출하다 구기자·산수유로 품목을 늘려갔다. 산 돼지와 오징어채·성게알젓 등 내다팔 만한 것은 모두 수출했다. 74년 오징어채를 가공할 공장을 찾다가 경북 울진군에서 통조림 설비가 있는 수산가공 공장을 사들인 것이 통조림 회사로 변신한 인연이 됐다. 오징어가 나지 않는 철엔 공장 설비를 활용해 꽁치나 정어리 통조림을 만들어 ‘유동’이라는 브랜드를 붙여 팔았다. 점차 복숭아·굴 등으로 품목을 늘려갔다.

효자상품 골뱅이 통조림을 만들기 시작한 건 80년. 당시 서울 을지로 일대 오피스타운에서 직장인 안줏감으로 골뱅이 통조림이 유행하기 시작하자 유성도 ‘유동골뱅이’를 내놓았다. 강 사장은 “당시 통조림 만드는 회사라면 죄다 골뱅이 제품을 내놓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건 몇 안 된다”고 말했다. 유성물산교역의 골뱅이 제품 매출 비중은 70%에 달한다.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골뱅이를 대표상품으로 키울 수 있었던 건 품질 관리와 원자재 확보 노력 덕분이었다. 골뱅이가 인기를 끌자 남획을 해 동해의 골뱅이 생산량은 해마다 줄었다. 자연히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일부 무역업자들 사이에 “영국·아일랜드산 골뱅이가 동해 것과 맛이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93년 강 회장은 발 빠르게 유럽산 골뱅이를 들여와 시장점유율을 넓혔다. 파를 잘게 썰어 매콤하게 무쳐낸 안줏감으로 사랑받으며 사세를 확장했다.

◆경영 인프라 개선=2003년 강승모 사장이 경영을 이어받은 뒤 40년 넘은 기업의 변신이 시작됐다. 당시 서울대 경제학부 출신인 그는 재정경제부의 잘 나가던 보직 과장이었다. 행정고시 동기 중에서도 선두권으로 꼽혔다. 하지만 부친이 2002년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자 가업을 잇겠다고 결심한다. 공직 생활이 바빠 그때까지 부친의 회사를 제대로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다. 회사를 둘러본 뒤 그는 “시대에 너무 뒤처졌다”고 절감했다. 제품력이나 임직원들의 생산·유통 노하우는 훌륭했지만 업무 방식이 전근대적이었다. e-메일을 쓰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아직도 월급을 현금으로 봉투에 넣어주고 있었다. “회계도 수기로 적고, 통조림 맛을 내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조리사가 없더군요.” 마케팅 개념이 별로 없으니 제대로 된 담당 직원이 있을 리 없었다.

강 사장은 우선 회사 인프라를 대폭 개선하기 시작했다. 회계 전산 프로그램을 깔아 재고 관리를 했다. 지난해엔 요리사 두 명을 뽑아 새 메뉴를 만드는 개발팀을 만들었다. 대형 식품회사 출신의 마케팅 인력도 수혈했다. 임직원의 평균 연령이 44세일 정도로 고참이 많아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겠다”는 비명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강 사장은 “이 정도도 변하지 않으면 회사가 존속하기조차 힘들다”고 설득했다.

제품 구색도 늘렸다. 골뱅이·꽁치·복숭아뿐이던 통조림 제품의 가짓수를 늘리고 생선 통조림은 양념한 것들을 내놓아 맛을 다양화했다. 강 사장은 “제품 개발은 이제 시작 단계여서 앞으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빵부터 와인까지 먹을 수 있는 건 모조리 통조림으로 만드는 습성이 있는 유럽·일본에 비해 우리나라 통조림 시장은 걸음마 단계”라는 것이다. 통조림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국물 요리와 맞벌이 부부를 겨냥한 반찬 통조림도 집중 개발할 계획이다.

통조림이 웰빙 음식문화에는 왠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통조림은 그 어떤 보존 방식보다 환경친화적이에요. 통조림에 대한 소비자의 고정관념을 빨리 바꾸는 건 우리 업계의 숙제지요.” 제조 과정의 음식물은 열로 살균되고, 빈 깡통은 100% 가까이 수거해 재활용하니까 환경친화적이기도 하다는 설명이다.

통조림을 넘어 종합식품회사로 성장하는 꿈도 꾼다. 강 사장은 “일단 식품 수출입 노하우를 살려 냉동식품 시장에 진출할 생각”이라며 “통조림의 사촌 격인 레토르트 파우치(비닐·알루미늄 등 재질의 저장 주머니)를 활용한 제품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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