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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mas트리'는 우리나라 자생식물 유출돼 탈바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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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최대 규모의 표본 수장고를 갖춘 국립생물자원관(인천광역시 서구 경서동)이 10일 개관한다.” 7일 환경부 보도자료 중 일부다. 동양 최대규모의 표본 수장고라는 점에선 자랑스럽지만 우리 경제 규모로 볼때 이제야 생물자원관이 들어선 것은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생물자원관이 없는 ‘유일한’ 국가였다.

◇생물자원은 보물=7일 환경부에 따르면 유엔 생물다양성협약(1992년 6월)이 국가소유 생물자원에 대한 주권적 권리를 인정한 후 생물자원은 식량과 에너지 부족, 난치병, 환경문제 등 인류가 처해 있는 난제를 해결할 열쇠이자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지닌 보물로 각광받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미국의 국립암연구소에서는 열대식물 7000여종에서 항암제와 에이즈 치료제 등 생약 성분을 추출했다. 독일 바이엘사가 버드나무 껍질에서 해열 진통제인 아스피린을 개발했다. 연간 5000억∼8000억달러 규모의 생물자원 시장을 놓고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자원 1㎏의 가치를 추산해 보면 휘발유가 1달러, 금이 1만 달러인데 비해 인간 성장 호르몬은 2000만 달러, 열대식물에서 뽑아내 백혈병 치료제로 쓰이는 빈크리스틴은 1190만 달러에 달한다. 총성 없는 전쟁에 이제야 뛰어들게 된 것이다.

◇한국 생물자원관 수 ‘0’=우리가 손을 놓고 있는 동안 일본ㆍ미국ㆍ소련ㆍ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이미 18세기부터 생물자원관을 건립해 자국의 생물 다양성 조사는 물론 식민지와 제3세계 국가 등에서 해외 생물자원 확보에 주력해왔다. 미국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은 8000만점, 프랑스 파리 자연사박물관은 7000만점이나 생물표본을 소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국립생물자원관 건립 계획안에 따르면 국내의 생물 다양성은 국토 개발로 인해 급격히 감소했다. 한반도의 생물은 약 10만종으로 추정되나 현재까지 3만종만 기록되고 있다. 우리나라 재래작물의 품종 약 2만 품종 중 74%가 1985년 이후 10년 사이에 사라졌다. 전세계적으로 녹색혁명을 일으킨 한국 토종인 ‘앉은뱅이 밀’은 현재 눈씻고 찾아봐도 그 자취를 볼 수 없게 됐다. 이에 반해 일본은 19세기말, 20세기초에 우리나라 벼ㆍ보리ㆍ밀 등 작물 재래종 대부분을 수집, 보관 중이다. 미국 일리노이대의 경우 우리나라 작물 재래종 총 5730점을 보관 중이다. 이것도 모자라 1997년부터 2년간 우리나라 4대 종자회사(홍농ㆍ서울ㆍ중앙ㆍ청원) 모두가‘종자 확보’를 노리는 외국기업에 인수ㆍ합병됐다.

◇구상나무 주권만 있었더라도=그동안 우리나라 자생생물은 ‘로열티’ 한 푼 없이 해외로 유출됐다. 환경부 오현경 박사에 따르면 한라산과 지리산 특산식물인 구상나무는 1904년 유럽에 반출돼 크리스마스 트리로 상품화됐다. 북한산에 자리하고 있는 정향나무는 1947년 미국에 의해 채집돼 ‘미스킴 라일락’이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의 정원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네덜란드로 반출된 한국산 나리는 현재 25종의 신품종으로 개발돼 한국으로 연간 400여만 달러어치가 역수입되고 있다. 이것만 제대로 챙겼어도 한국이 받을 수 있는 생물자원 로열티는 어마어마했다. 오 박사는 “국외 반출 승인대상 제도를 보완하고 사전통보 승인제도를 마련해 국내 생물자원 관리에 더욱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훈의 보고서‘자연사박물관과 생물다양성’(2000년)에 따르면, 외국의 생물자원관은 미국 1176개, 독일 605개, 영국 297개, 프랑스 233개, 러시아 205개, 일본은 150개 등이다. 이집트ㆍ우간다가 각각 9개, 르완다 3개, 북한이 1개다. 그런데 한국은 지금껏 ‘0’이었다. 생물자원관이 지금이라도 설립됐으니 다행이다. 많이 늦었지만 생물주권 및 세계 생물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는데 힘써야 하겠다.

☞한반도 자생생물=고유종과 외래종 가운데 상당 기간 한반도에 서식하면서 토착화된 생물.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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