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땅끝에 선 사람들(31) 『왜 그러세요?』 이시다가 다가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그녀는 명국이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길게 생각하셔야 합니다.멀리 생각하셔야지요.이제 겨우 시작이 아닌가요.』 『몸 움직일 수 있으면 나가야지요.』 『어디로요.어디까지요.』 이시다의 그 말에 명국은 입을 다물었다.그의눈은 이시다의 어깨 뒤편에 걸려 있는 그림 하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누군가 이곳 광부가 그렸으리라 생각되는 그 그림에는 저탄장 쪽에서 바라본 섬과 바다가 붉게 노을에 젖고 있어서,공연히마음을 어둠게 하는 우수같은 것이 드리워져 있었다.
『아직 멀었습니다.동백꽃이 다시 필 때쯤에나 나가게 될지 모릅니다.』 꽃으로 세월을 이야기하나.명국은 눈길을 돌려 창밖의하늘을 바라본다.누워서 바라보는 하늘은 언제나 먼 하늘이었다.
창의 넓이로 네모나게 잘려진 하늘이었다.그 하늘을 바라보며 저만큼의 하늘이 겨우 내 몫이로구나,명국은 그런 생각을 하 곤 했었다.다른 사람들의 하늘이야 넓고도 드넓겠지만,이제 내가 때로는 바라보며 때로는 머리에 이며 살아가야 할 하늘은 겨우 저만큼의 넓이,조각난 하늘이로구나,그런 생각도 했었다.
거기 이따금 구름이 걸리고,잿빛 하늘이 마치 무슨 색깔을 칠해 놓은 듯 발려지곤 했었다.
이시다가 눈을 깜박이면서 말했다.
『먼 일이라고,길고 긴 일이라고,그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그리고 나서 이제 고향에 돌아가시겠지요.』 명국의 가슴 속 저 밑에서 무엇인가 쓰라린 것이 엉키고 뭉치며 그의 몸을 떨리게 했다.하늘 하고 땅이 맷돌질을 하거라.이렇게는 못 산다.내가 왜,하고많은 사람 가운데서 내가 왜 하필이면 이 놈의 탄광에서다리 병신이 되어 나가야 하느냐.다 죽이고,다 부수고 거기 몸을 던져 나 또한 산산이 조각이 나도 좋다.몸을 떨리게 하는 그 분노를 참아내느라 명국은 부서져라 어금니를 악물었다.
못난 놈,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이 눈물이 치밀어 올라와서 명국은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일본 여자도 여자는 여자다.사내 놈이 여자 앞에서 눈물을 찔끔거리냐.허어허어.명국이 마음 속으로 웃는다.상처가 너덜거리듯 웃는다.이판에 그래도 염치 생각하고,계집 앞이라고 사내체면 생각하느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