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뒤늦은 김일성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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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무슨 일이 있을 때 아무리 善意를 가지고 마땅한 조치를 취하더라도 때를 놓치면 효과가 半減되거나 심한 경우 일을 그르치기까지 한다.優柔不斷함에서 오는 폐해다.北韓주석 金日成의 과거사에 대한 정부의 입장표명을 접하며 떠오르는 느낌이 바로 그런 優柔不斷함이다.
金日成이 민족분단과 동족相殘의 전쟁등에 대한 책임자라는 것은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그렇지만 그런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언제,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의미와 파급효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金日成의 과거사에 대한 정부의 태도표명은 그 런 뜻에서 南北韓관계의 정립및 개선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가 있다.
李榮德총리를 통한 정부의 입장정리는 당연한 조치라고 생각한다.다만 南北韓관계의 장래와 관련해 시기만 잘 선택했더라면 더욱생산적이고 효과적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金日成이 얼마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닌 인물이건,그의 사망은 우리에게 국가적으로나,민족적으로나 엄청난 대사건이었다.그런사건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그 즉시 정부로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것이 합당한 일이다.그런 것을 정부는 공연 히 북한의 비위를 건드려 남북한관계가 악화될지도 모른다는 지레 걱정으로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남북관계에 예상치 못했던문제를 제기하고,南韓내부에서는 소모적이고도 불필요한 이른바 弔問논쟁을 일으켰다.정부가 아예 처음부터 18일의 金日成과거사 평가와 같은 입장을 밝혔더라면 일부 국회의원이 정부의 弔問용의를 묻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두고 국내에 혼선이 빚어지면서 오히려 북한에 政略的으로 이용되고 對南공격까지 할 빌미를 주어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분위기가경색되어 버렸다.
金日成사망직후 정부의 정세판단이 매우 어려웠고,정상회담 합의로 모처럼 好轉국면에 접어든 남북한관계를 그르치지 않으려는 정부의 고충을 모르는바는 아니다.金日成에 대한 평가와 南北韓관계개선이라는 문제는 물론 떼어놓기 어려울 만큼 모 호하고도 어려운 문제다.그러나 그렇게 어려운 때일수록 原則論에 서야 한다.
18일 정부의 입장표명이 바로 그러한 원칙론이었다.이 때문에일단 弔問논쟁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정리된 셈이지만 남북한관계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물론 우리 정부는 변함없이 대화를 통한 韓半島의 안정을 추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의도가 아무리 善意라 하더라도 입장이 명확하지 않고 우물쭈물하면 이번 경우처럼 북한의 誤判을 불러 올 수도 있다.적극적이고도 생산적인 남북한 대화를 위해 정부의확고하고도 명백한 입장과 정책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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