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 공장'이어 '자격증 공장' 논란 … 미국 한의사 4박5일이면 딴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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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직업을 찾던 이모(55.자영업)씨는 지난해 말'(미국 공인회계사처럼) 한의사 시험도 미국령 괌에서 볼 수 있다'는 광고를 인터넷에서 발견했다. 시험 일정은 4박5일이면 끝났다. 이 자격증으로 미국 17개 주에서 한의사 개업을 할 수 있다는 설명도 들었다. 자격증을 받기 위해 총 550만원 정도가 들었다. 함께 괌에 온 이들이 100명은 넘었다. 시험은 1년에 10차례 정도 치러진다고 했다.

한의학 지식이 전혀 없던 이씨는 형식적인 시험을 본 후 '미국 대체의학 관련 자격증을 발부하는 법인'이라는 A협회에서 한의사 자격증(doctor of oriental medicine)을 받았다. A협회 측은 이씨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덕에 한국 개업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A협회는 "괌에 있는 E대학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A협회 회장과 E대학 총장은 동일 인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E대학에서 학위를 따는 데 1000만원을 더 썼다. 그는 이민 절차를 밟아 미국에서 개업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씨의 꿈은 무너졌다. A협회 자격증을 인정해 주는 미국 주정부를 찾지 못한 것이다. 대한한의사협회 국제팀 관계자는 "미국에는 한국과 같이 종합적인 진단을 내리는 '의사(medical doctor)'로서의 한의사 개념이 거의 없다"며 "대신 대부분의 주에서 침구사 자격증만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한.미 FTA 협상에서 한의학 분야는 "두 나라의 한의사 자격이 달라 상호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캘리포니아주와 네바다주는 독립적인 침구사 자격 시험을 치르고, 40개 주에서는 '침구 및 동양의학 국가 자격위원회(NCCAOM.National Certification Commission for Acupuncture and Oriental Medicine)에서 시험을 주관한다. 나머지 주는 침구학과 관련된 법률이 체계적으로 정비돼 있지 않다.

한의사 자격증을 발급하는 A협회는 LA에 등록돼 있지만, 인터넷 홈페이지는 없다. 대한한의사협회 국제팀 관계자는 "주 정부가 요구하는 자격을 줄 수 있는 단체 중에 A협회는 들어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대한한의사협회가 작성한 '미국 보건분야 면허제도의 이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동양의학으로 진료하는 이들에게 의학 박사(doctor).의사(physician)라는 호칭을 쓰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A협회 측은 "개별 법인이 자격증(license)을 발급하는 데 법적인 하자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정부가 자격을 인정하지 않으면, 개업 면허가 나오지 않는다.

E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는 한 피해자는 "괌에 직접 가 보니 교수도 없고, 학교 시설도 변변한 게 없었다"며 "사무실과 간판만 덩그러니 있어 황당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협회 측은 "E대학은 괌 정부에 정식 허가를 받은 대학"이라며 "독지가에게 100억원의 기부금을 받아 6년제 의과대학으로 정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협회의 자격증을 받은 사람 중에는 무면허 침구사나 미국 영주권을 가진 노년층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무면허 침구사는 "FTA 되면 써먹을 수 있다"는 말에, 영주권자는 "개업까지 도와준다"는 말에 응시했다고 한다.

경찰은 최근 A협회와 E대학의 자격증 발급에 문제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에 따르면 일부 대체의학 종사자들이 그럴듯한 이력을 포함시키기 위해 A협회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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