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사라져 집단발작 가능성-학자들이 본 북한의 사회심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반세기동안「살아있는 神」으로 군림해왔던 金日成의 사망은 북한주민들에게 어떤 심리적 영향을 미치게 될까.
金日成의 동상앞에 수만군중이 운집,울부짖는 북한방송필름이 공개돼 많은 시민들이 또다른 충격을 받은 가운데 북한주민들의 심리상태와 앞으로의 변화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신분석 전문의 白尙昌박사(한국정신분석정치학회장)는『북한 주민들이 어버이를 잃은 슬픔에 빠져 2~3개월동안 집단 우울증세를 보이다 결국은 집단 히스테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白박사는『짝사랑하는 애인을 잃은 젊은이처럼 당분간 식욕과 근로의욕을 잃고 밤잠을 못이루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더러는 자살소동을 벌일것』이라며『이같은 증상이 타인에 대한 공격양태로 발전하면 걷잡을 수 없는 집단 히스테리에 휩싸이고 간 통.살인등 범죄로까지 발전,체제의 위기가 닥쳐온다』고 진단했다.
서울대 金明彦교수(조직심리학)는『반세기동안 북한사회를 지배해온 패러다임이 일거에 사라져 아무도 장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극도의 불안에 사로잡히게 될것』으로 보고『과거 스탈린의 관을 공개할 때 2천여명의 소련인들이 죽거나 다친 것처럼 이번에도 관이 공개될 때 큰 혼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金교수는 또『심리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은 함께 모이게 되는 법이어서 남한소식을 비롯한 각종 유언비어가 나돌게 된다』며『아버지만큼의 카리스마가 없는 金正日후계체제는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범죄등 사회불안을 조장하거나 방치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고려대 成瓔信교수(여.심리학)는『독재자에 대한 우상화는 성인의 이성을 마비시켜 유아수준에 머무르게 한다』며『히틀러의 대중연설을 들은 독일 국민들이 집단적으로 기절했던 것처럼 金日成의장례식 때에도 이같은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 다』고 말했다. 서울대 車載浩교수(사회심리학)는『북한주민들이 보이는 슬픔은그동안 유일체제하에서 억압된 감정을 승화시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며『金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는 체제에 의해 강요된흠모였기 때문에 곧 잊어버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고 예상했다. 한편 白박사는 金日成의 사망소식을 접한 우리국민들의 반응이6.25체험여부등 세대.계층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白박사는『실향민이나 6.25를 체험한 기성세대의 경우 오랜세월 金日成에 대한 증오감과 복수심리가 누적돼 있었으나 갑자기 그 대상이 사라져 일시적으로 허탈감에 사로잡히고 있다』며『오랜세월동안 범인을 쫓던 경찰관이 체포 일보직전에 범인이 죽었을 때 기쁨보다는 좌절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반면 6.25를 체험하지 못한 新세대들은 남의 입장이돼 생각하는 공감의식이 부족해 무관심과 냉소로 일관하고 있으며 金日成주의를 추종해온 주사파들은 비관에 빠진 나머지 일부는 자살까지우려된다고 분석했다.
白박사는『이처럼 세대별.계층별로 복합적인 반응을 나타내 전체적으로는 충격적인 사실이 현실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감정표출이 없는 감정보류현상이 당분간 나타나게 될것』이라고 말했다.
〈芮榮俊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