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체제와 우리의 대응(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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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는 항상 어려운 문제지만 정부로선 지금처럼 힘겹고 곤혹스러운 일은 드물 것이다.김일성 사후 어느 방향으로 갈지 예측할 수 없는 북한정권을 대상으로 한반도의 평화및 안정의 유지와 통일로 가기까지의 방안들을 구상하고 실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껏 알려진 평양의 정황으로 미루어 김일성의 후계체제는 일단 오랫동안 권력 세습을 준비해온 김정일체제로 이행되는 것 같다.이 새로운 체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당장 한치의 소홀함도 없이 준비해 가며 대화해야 할 상대다.우리로서의 문제는 이 새로운 대화상대의 정체가 불투명하고 앞날이 지극히 불안정하다는 점이다.김정일 본인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는데다 그가 이끌게 될 북한 자체의 경제적 존립이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어 당분간 상황은 유동적일 수 밖에 없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김정일체제가 안정기반을 다지기까지는 대내외 정책에서부터 대남정책까지 기존의 기조를 유지하리란 점이다.이는 남북한관계가 상당 기간은 김일성 생존시와 같은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그러나 김정일체제가 자리잡는 과정에서 그들 내부적으로 혼란이 빚어질 경우 남북한관계는 다른 차원에서의 변화를 배제할 수 없다.그러한 돌발적인 변삭에 대해 정부로서는 다각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아울러 김정일 개인의 특성에 따른 북한체제에 대한 전망이다.개방 지향성을 갖고 있다는 평가도 있고,그 반대의 평가도 나오고 있다.그에 대한 직접적인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그가 북한을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갈지 예단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김정일과 관련해 밝혀진 몇가지 사실로 미루어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일이 있다.영화인 신상옥·최은희부부 납치에서,아웅산사건과 KAL기 폭파사건 등에서 나타나는 그의 폭력적 성격이다.그러한 성격은 궁지에 몰릴 경우 남북한관계에 서 자칫 모험주의로 연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그런 일이 빚어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대비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김정일체제가 어떤 성격을 지니든 당장의 급한 문제는 파탄상태의 경제상황에서 헤어나는 일일 것이다.그러기 위한 방법은 개방과 개혁의 길밖에 없다.그러나 체제의 속성이나,또 체제를 유지하려는 기득권층 때문에 당장은 그 개방과 개혁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우리가 북한 지도부로 하여금 그러한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면 불안정한 상황에서 빚어질 수도 있는 돌발사태 같은 것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경계할 일은 경계하면서 새로운 북한체제가 안정되도록 정부 나름대로 유도해 한반도의 평화구조가 정착되고,장기적으로는 통일로 갈 수 있는 관계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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