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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골/삼복에도 살을 에는 「동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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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질서정연한 자연의 순리를 거부하는 또 다른 자연의 신비―.찌는 듯한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을 아랑곳하지 않는듯 뙤약볕이 내려쬐는 바위밑에 얼음이 얼고 서늘한 바람이 몰아치는 계곡에 서면 자연이 빚어내는 오묘한 조화가 신기하기만 하다. 「여름에 겨울을 만날 수 있는 곳」.경남 밀양군 산내면 천황산 얼음골,경북 의성군 춘산면 빙혈에는 계절의 행진이 지난 겨울쯤 정지해버린 듯한 「파격의 신선함」이 더위를 까마득히 잊게 만든다.
◎밀양 얼음골/바다틈새마다 얼음 송송 “거대한 냉동실”
조선조 명의 유이태(『소설 동의보감』에는 유의태로 명기)가 제자인 허준(동의보감의 저자)에게 생체해부 기회를 주기 위해 자신의 생을 미련없이 마감한 곳으로 알려져 더욱 관심을 끄는 얼음골 계곡 곳곳에는 냉기가 하얗게 뿜어져나오고 그 사이를 비집고 흐르는 냇물에 손을 담그면 금방 뼈마디가 시리다.
삼복더위에는 얼음이 얼다 처서가 시작되면 얼음이 녹기 시작해 한겨울에는 훈훈한 김이 솟는 이상기온지대인 이곳은 경사 60도정도를 이루는 약 3천여평의 돌무더기계곡.박달나무·오리목·단풍나무가 무성한 깊은 숲속에 매미소리가 요란해 한 여름임을 알려주는 천황산 중턱(해발 6백여m쯤)비탈진 계곡에는 검은빛 암산암 돌덩이들이 실어나른듯 쌓여있고 그 바위아래 곳곳에 얼음이 얼어있다.이 돌무더기 앞에 서면 마치 거대한 냉동실에 들어가 있는듯 냉기가 온몸을 감싸 불가사의한 신비함을 느끼게 된다.
이같은 이상현상에 대한 학계의 원인설명은 분분한데 계곡의 방향과 지하수·바위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빚어지는 현상등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아직 명쾌히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70년 천연기념물 제224호로 지정됐다.
이곳에서 불과 2백여m 벗어나면 산자수명한 가마볼협곡에 이르는데 이곳의 온도는 아주 딴판.계곡물조차 얼음골과는 10도이상높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가마볼에 이르는 오솔길 건너 모습을 드러내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들과 기암괴석을 타고 쏟아지는 폭포들의 절경은 장쾌한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그사이로 수줍은듯 숨어 있는 아기자기한 골짜기,가재가 살것같이 물살이 투명한 계곡등은 전국 어느 곳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절경이다.
산입구에서 벗어나 한쪽에 민박할 곳이 모여 있으나 편의 시설은 매우 열악한 편.주변 볼거리로는 얼음골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표충사가 있다.이절은 신라 흥덕왕때 창건된 절로 사명대사의 가사등 유품을 간직하고 있다.얼음골 입구에서 북쪽으로 2㎞지점에는 물이 큰 암반위에 떨어져 절구모양으로 움푹 팬 소를 만들었다해 붙여진 호박소,가지산 도립공원등이 있다.
서울에서는 기차를 타고 밀양역에서 내린후 다시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얼음골 가는 버스를 타면 50분후에 도착한다.승용차로 갈때는 경부고속도로 언양인터체인지에서 나와 구불거리는 산길과 석남고개를 넘어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의성빙혈/온몸에 소름끼쳐 5분도 못견뎌
의성역에서 20㎞ 떨어진 의성군 춘삼면 빙계리 서원마을은 고즈넉하고 푸근한 시골정경이 살아있는 곳으로 한여름에 얼음이 어는 얼음구멍 빙혈과 찬바람이 씽씽 나는 바람구멍 풍혈등이 감추어져 있다.
빙계산으로 오르는 곳곳 바위틈에서 새어나오는 서늘한 바람은 관광객들이 바람의 근원지를 찾아 바위틈과 작은 동굴속을 기웃거리게 발길을 붙잡는다.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빙혈위에 돌집을 지어놓고 유리문으로 접근을 막아 아쉬움이 남는데 일단 15명정도가 들어갈 수있는 돌집에 들어가면 더위는 금방 얼어붙게 마련.
태양이 내려쬐는 길가로 입구를 그냥 드러내고 있는 풍혈에 들어가도 5분정도면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냉기가 엄습해온다.마을 곳곳에는 크고 작은 풍혈들이 여러곳 있다.
빙계산으로 오르는 길목 건너편에는 맑은 시냇물을 사이에 두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오랜 세월동안 흐르는 물에 깎여온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이 재미있는 전설들을 간직하고 있었다.산입구에 대흥사(옛 빙계사)라는 절도 있고 신라말이나 고려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빙산사지 5층석탑(보물327호)이 까마득한 세월의 흐름을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다.
승용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의 구미인터체인지에서 내려 빙계리까지는 1시간30분거리.고속버스를 이용할 경우 대구에서 내려 북부터미널에서 6분간격으로 있는 의성행 시외버스를 타면 1시간20분 걸린다.이곳외에도 경북 청송군 부동면 내용리 주왕산기슭 얼음골,충북 제천군 수산면 능강리 금수산중턱,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냉장터등에도 「얼음골」이 있어 여름피서객들이 찾아든다.<글=고혜련기자><사진=오종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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