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비싼 데는 유통업체 책임 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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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은(68·사진) 신세계 명예회장이 국내 백화점의 잦은 세일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정 명예회장은 2일 서울 충무로1가 신세계 본사 문화홀에서 연 임직원 특강에서 “국내 물가가 너무 비싼 데는 유통업체 책임이 크다”며 “가격 인하 수준을 넘어선 ‘가격 혁명’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정 명예회장은 본지가 올 5~6월 7회에 걸쳐 보도한 ‘한국 너무 비싸다’ 시리즈를 인용하며 국내 물가가 세계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하고 “백화점 업계의 잦은 세일 때문에 소비자들 사이에 ‘정상 가격에 사면 손해’라는 불신이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올 들어 지금까지 81일 동안 브랜드 세일, 정기 세일을 진행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세일을 한 날(94일)보다는 줄었지만, 여전히 나흘에 하루꼴(27%)로 세일을 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위해 합리적 가격대의 ‘노 세일 브랜드’를 늘리고 세일 기간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유통업계의 경쟁 때문에 세일 기간을 확 줄이긴 힘들다”고 말했다. 정 명예회장은 또 “대형마트는 셀프 구매가 원칙인데 판촉사원을 동원해 충동구매를 유도한다. 백화점이 과소비를 조장한다는 일각의 목소리가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정 명예회장은 물가 안정을 위해 유통업체가 ‘생활 필수품 10년간 가격 동결’과 같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내 물가가 비싼 원인을 ^복잡한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높은 건물 임대료와 인건비 ^비쌀수록 좋은 제품이라고 여기는 과시형 소비 행태 등에서 찾았다. 정 명예회장은 특히 “비용 상승분을 제품 가격 인상으로 해결해 온 제조업체, 상품원가가 오르면 곧바로 판매 가격을 인상한 유통업체 등 기업의 책임이 크다”고 강조했다.

 그가 물가 안정을 위한 방안으로 제시한 것은 산지 직거래 등을 통한 유통단계 개선이다. 또 더 싸고 좋은 물건을 찾아 글로벌 소싱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라고 주문했다. 정 명예회장은 “일본의 경우 참치는 키프로스, 오징어는 모로코 등에서 사들여 자국 국민에게 싼 상품을 제공한다”며 “선진국의 소매업체처럼 전 세계 오지를 찾아다니며 소비자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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