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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컴백 '라이브 와이어' 공연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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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9일부터 지난 1일까지 3회에 걸친 서태지의 역사적인 '라이브 와이어' 공연이 끝났다. 첫날 세계적인 록그룹 콘(Korn)과의 합동 공연에 대해 대부분 언론들은 극찬을 보냈다. "환상의 무대와 연주, 역시 서태지" "폭풍의 사운드, 이것이 라이브" "서태지 신화는 살아있었다" 등의 감동적인 문구가 다음 날 일간지.스포츠연예지를 장식했다.

공연 리뷰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의 이런 찬사는 어느 정도 예고된 일이었다. 한결 부드러운 태도, 대중적인 사운드, 음반업계의 지독한 불황, 그리고 이슈 만들기에 예민한 언론의 속성 등. 이런 조건들이 맞아떨어져 미디어의 호의적인 반응을 끌어냈을 것이다. 더욱이 한국에서 서태지와 '피어펙토리', 그리고 '콘'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기념비적인가.

'라이브 와이어'는 분명 대단한 사건이었다. 공연장의 열기도 예상대로 뜨거웠다. 바닥을 후벼팔 듯한 점핑과 미칠 듯한 헤드뱅잉, 격렬한 슬램이 4시간이나 계속됐다. '라이브 와이어'의 본래 의미에 충실하게 모두가 감전된 듯 광란의 축제를 보냈다. 그러나 팬들의 열광과는 별도로 이번 공연이 언론의 평가대로 완성도가 대단히 높은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냉정해지고 싶다. 특히 서태지를 평가의 중심에 놓으면 더욱 그렇다.

서태지는 6집 발표 이후 한국의 열악한 공연 문화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나름의 수고를 하고 머리를 짜냈다. 그 결과 적자를 감수하면서 초대형 '이티피페스트'를 열었고, 라이브에 목마른 팬들은 열광했다. '라이브 와이어'도 단순히 서태지 본인의 컴백 공연이 아니라 이런 문제 의식의 연장에서 기획됐다고 봐야 한다.

사실 라이브의 황제 '콘'과 함께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서태지에겐 영광이자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공연의 호스트(주인공)는 누가 뭐래도 서태지 그 자신이다. 결론적으로 공연의 호스트로서 서태지는 공연 전체를 일관되고 완성도 높게 끌고가는 전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다분히 이벤트에 무게 중심을 둔 그의 공연 컨셉트는 팬과의 자유로운 '감성교감'을 고려한 것이긴 했지만 너무 이질적이어서 '피어팩토리'와 '콘'의 사운드를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데 실패했다. 서태지는 아이돌 스타로서의 자신의 과거로 회귀하려는 듯 '환상 속의 이미지'를 불러내는 장치를 남용했다. 그 결과 공연 내내 아이돌 스타로서의 이미지와 성숙한 뮤지션으로서의 이미지가 계속 충돌을 일으키는 난기류를 만들고 말았다. 더욱이 공연용으로 난해하게 편곡된 곡들을 소화하기에는 세션들의 연주력이 따라주지 못했고 , 사운드의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서태지의 보컬도 뭉게지는 현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반면 음향출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묵직한 사운드, 멤버들의 격렬한 슬램, 현란한 기타리프와 음질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보컬 조너선의 카리스마 등 정면 승부를 걸어오는 콘의 공연을 본 순간, 서태지 공연의 갖가지 소품과 즐거운 난장은 순식간에 공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첫날 열린 '라이브와이어'는 그저 세 가지 다른 빛깔을 가진 최고의 뮤지션들이 펼치는 난장을 즐기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라이브공연은 밀폐된 음반 작업과는 그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오랜 팀워크와 내공이 필요한 전방위 예술이다. 라이브 공연을 다루는 서태지의 실력은 컴백을 위한 이벤트를 넘어서 크고 작은 공연장에서 팬들과 일상적으로 만나는 과정을 통해 더욱 성숙해질 수 있다. 평소 공연 리뷰에 인색한 언론이나 라이브 프로그램을 철저하게 외면하는 방송사들도 대형 이벤트에만 호들갑스럽게 대응할 게 아니다. 한국의 열악한 공연 현실에 대해 평소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수많은 팬과 언론.평론가들의 후일담을 뒤로 하고 '라이브와이어'는 끝났다. 먼 훗날 이 사흘간의 공연이 제대로 다시 평가될 때, 그때는 그의 공연이 자주 개봉되어 일상의 활력이 되고, 그가 꿈꾸는 진정한 '라이브와이어'의 세상이 조금 더 앞당겨져 있길 기대한다.

이동연 문화평론가.문화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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