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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디딤돌 놓으십시오/남북정상에게 띄우는 글/고은 시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일시적 정권장식품 안되기를…
해방 50주년을 앞두고 남북정상회담이 극적으로 실현되기에 이르렀다.
어쨌거나 기대 이상의 역사적 의의를 여기에서 찾아 마땅하다.그런 한편으로 이 해방 50년 혹은 분단 50년을 살아오면서 우리는 민족의 보편적 염원에 대해 무엇을 했는가라는 깊은 자책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
좀더 격앙된 어조라면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의 현대사를 맡을 자격이 있는가라는 고통스러운 질문 앞에 서있어야 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하나의 민족은 전후 양극체제의 불행한 현장으로서 둘로 갈라지고 말았다.내장공동체의 인식으로는 그것은 두개의 삶이 아니라 하나의 죽음인 것이다.
하지만 이 반세기 분단모습은 이제 모순론의 차원을 떠나 분단체제로 나아가고 있다.분단조차도 역사발전의 어떤 가능성을 확보한 셈이다.
우리는 남북한의 원시적 적대관계에서도 아이를 낳아 길렀으며 적어도 남한은 고도성장의 규모로 삶의 일차적 품질을 그 아지랑이 같은 절대빈곤으로부터 건져올리게 되었다.
이러구러 6·25사변 미체험 세대가 무려 전체인구의 80%를 차지하게 되었고 그 민족 최대의 실패작인 6·25는 폭삭 늙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사변전 남쪽의 고무신과 북쪽의 명태를 물물교환하던 38선 암거래가 그동안 타도 대상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이제 합법적인 간접교역에까지 이르렀다.정치보다 경제가 먼저 남북의 본능적 형식을 잇는 상징이 된 셈이다.
그동안 두 체제는 70년대 남북공동성명,80년대 남북합의서를 창출해냈다.그것은 전민족의 통일 지향적 각성을 기반으로 한 발전에 값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발전이 한 순간의 명분을 충족시켰을 뿐 언제나 일시적인 장식이 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70년대 공동성명은 남한의 유신헌법과 북한의 신헌법의 모태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남한은 민족의 자율적 항체를 길러냈다.북한은 그런 항체를 상부구조의 강화에 집중시킨 것인지 모른다.이 과정에서 남북 상호간의 부신임은 정권에서보다 민간에서 더 숙명적으로 연장되었다.
최근 1년 이상의 북한핵 문제에 대한 국제적 혐의는 그것이 전술용이냐 외교용이냐를 떠나 북한의 본질을 드러내는데서 대수로운 것이 아니다.<2면에 계속>

<1면서 계속> 이 핵문제 협상에서 가령 월남전의 하노이측이 보여준 실질외교와 같은 능력을 발휘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환경을 획득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이 고립무원에 가까운 상태에서 버텨온 의지를 평가할지 모른다.그러나 그 평가는 다음 단계에서도 여전히 그 의미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세계체제에 대한 하위체제 현실의 한계를 자각할 능력의 문제인 것 이다.
아무튼 이 어리둥절한 가운데 세계의 이목을 모으는 첫 남북정상회담에 행여 어떤 국면 타개의 술수나 저의가 있다면 그것을 폐기하고 최소한 느슨한 통일기구의 가동이라도 이루어내기를 바 랄따름이다.
이제까지 남한은 심지어 북한을 지지하는 소규모의 세력까지 분포될 만큼 다양한 사회 형색을 만들었다.이것이 남한의 일정한 강점이기도 하다면 북한은 일원논의 무오류성 이외에는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이것을 자랑할만한 사회통합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정녕 새로운 정치문명과는 무관하다.
남한은 남한대로 대국적 전망에 철저히 길들여져야 한다.그저 회담에서 일구어진 합의사항 하나쯤으로 좋아하는 자기 현시의 치기는 지양할 노릇이다.
바야흐로 때는 6·25 44주년의 계절이다.그때의 구호가 아직도 휴전선에서 유효한 채 오늘에 이르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일제식민지 질곡에서 헤어난지 반세기가 되는 오늘의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창조적 부응을 별개의 것으로 한다면 우선 북한은 남한을 부정하는 분단 고착 노선은 타파해야 겠다.
이 중대한 회담이 민족 내부의 힘에 의한 통일을 개척하기 바라면서 남북의 양김은 양김만이 아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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