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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서 분쟁 생기면 어떻게 해결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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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12면

개성공단의 ㈜신원 공장에서 북한 근로자들이 분주하게 손을 놀리며 일하고 있다. 공단 입주 업체들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한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앙포토]

정답은 ‘없다’다. 현재로선 어느 곳에 소장을 내도 배상 판결을 이끌어낼 가능성이 거의 없다. 설사 우리 쪽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낸다고 해도 북한 주민 B씨에게서 돈을 받아낼 방법이 마땅치 않다. 다음달 2일 남북 정상회담 개최로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투자 활성화를 뒷받침할 분쟁 해결 장치는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사실상 속수무책…특별재판소 세워야”

개성공단은 북한 지역 안에 있고, 입주 업체도 북한 기업으로 등록된다. 이 때문에 공단 입주 업체와 소속 직원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일어날 경우 재판 관할권이 북한과 남한 중 어디에 있느냐를 가리는 것은 쉽지 않다. 남한 법원이 재판을 맡는다고 해도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소장이나 관련 서류를 어떻게 보내고 ▶증거를 어떻게 찾으며 ▶판결을 어떻게 집행할 것인지에 관한 법적 근거가 현행 개성공업지구 관련 규정과 합의서에는 없다. ‘남북상사중재위원회’를 통한 중재 절차가 있으나 중재 대상이 민사 분쟁 중 일부인 상사거래에 그친다. 이조차도 정상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해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개성공단의 한 관계자는 “이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일부 입주 업체에선 전기요금을 연체하고 있고요. 공장을 지은 다음 건축 대금을 주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원자재 대금이나 남측 근로자에게 줘야 할 임금을 체불할 우려도 나오고 있어요.”

일부 입주 업체가 공단 밖 개성 시내에 있는 북한 업체에 임가공을 맡기면서 거래가 북한 내부로 퍼져나가고 있다. 임가공 수수료를 제대로 주지 않을 경우 남북 업체 간 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 북측 근로자에게 줄 임금이 밀리거나, 북측 근로자와 남측 근로자 간에 교통사고나 폭력사건이 일어났을 때 다툼을 어떻게 해결할지도 의문이다.
더욱 시급한 문제는 남측 법원에서 개성공단 내 부동산에 대한 판결이나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집행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05년 한 금융기관이 부도 업체의 개성공단 내 공장에 대해 법원의 가압류 결정을 받아냈으나 관련 규정이 없어 집행을 하지 못했다.

통일 관련 법제를 연구해온 정창호 대법원 재판연구관(판사). 그는 “토지이용권이나 건물소유권에 미리 저당권을 설정해 담보를 잡으면 ‘개성공업지구 부동산 규정’에 따라 경매를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신용을 믿고 담보 없이 돈을 빌려주는 거래가 훨씬 많다”고 지적한다. 그는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가 남측 법원의 판결과 결정의 효력을 승인하도록 하고, 이것을 근거로 집행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한다.

“입주 업체 등록은 북한 기업으로 돼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남측 사람들 아닙니까. 남-남 간의 분쟁이 압도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어요. 개성공단도 북한 지역이긴 하지만 시장경제 원칙이 적용되는 곳이고요. 관리위원회가 남측 법원의 판결을 승인하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봅니다.”

현재 중국과 대만은 각각 최고인민회의 해석과 ‘양안(兩岸)관계 조례’를 통해 ‘공공질서 또는 선량한 풍속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양측 판결의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

법원행정처에서 통일사법 분야를 담당하는 양영희 사법정책심의관은 보다 과감한 조치를 제안하고 있다. 그는 “북한으로 하여금 개성공단에 특별재판소를 설치토록 해 공단 내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해결하고, 이 재판소가 남측 법원이 내린 판결을 승인하도록 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한다.

“북한 판사가 재판을 담당하도록 하되, 남측에서 판사와 법원 직원을 파견해 지원과 조언을 하면 됩니다. 특별재판소는 우리의 사법 시스템을 북한 지역에 접목한다는 점에서 남북 사법 공조의 첫걸음이 될 수 있고요. 분쟁 해결에 관한 법적 안정성을 높이면 투자 활성화와 외국기업 유치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형사사건 처리도 세부 규정을 추가로 합의해야 한다. 2005년 12월 금강산 관광지구에서 현대그룹 협력업체 직원 정모씨가 승용차를 몰다 북한 경비병 1명을 숨지게 하고 2명에게 중상을 입힌 사고를 냈다. 당시 북한 당국은 사고 조사를 내세워 정씨를 40일 넘게 억류했으나 남측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결국 현대그룹 측이 피해자(북한 경비병)도 아닌 북한 당국에 40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수원지법 안산지원 김영식 판사는 법원행정처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에서 “북측이 강제 조사를 할 때는 반드시 남측에 알리고 남측 대표를 조사 과정에 참여시키는 등 피조사자 권리를 강화하도록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판사는 “현행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지구의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는 북한이 엄중한 법질서 위반행위에 대해선 경고나 범칙금 부과, 추방에 그치지 않고 형사재판권 행사를 주장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측 주민이 북측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 개성시 인민재판소에 기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통 큰 합의’를 끌어내는 것도 좋지만, 개성공단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제도를 보완하는 것도 시급하다. 중국이 경제특구인 선전에 국한해 제정한 특별법은 이후 중국의 전체 법 시스템을 시장경제 쪽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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