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바둑산책>다시 확인한 최강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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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세계 최강 한국프로바둑이 또 한번 위세를 떨쳤다.
지난 3일 경주 힐튼호텔에서 벌어진「제7회 후지쓰盃 세계선수권전」준준결승(8강)에서 전년도 동반 결승진출자였던 한국대표 劉昌赫6단과 曺薰鉉9단이 일본대표 고바야시(小林光一)9단과 가토(加藤正夫)9단을 꺾고 나란히 준결승에 진출한 것.
이로써 한국프로바둑은 세계 4대기전을 석권했던 작년의 영광을지킬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진로배 세계최강전」은 이미 우승했고,「동양증권배」결승 5번승부는 曺9단이 요다(依田紀基)9단을 2대0으로 막판에 몰아넣었으며,「應氏盃」는 96년에 열리므로 동양증권배에서 한판만 더이기고 이 후지쓰배만 차지하면 금년에도 세계 프 로기전을 독차지하게 된다.
일본은 자신들의 희망이었던 고바야시와 가토의 탈락으로 초상집처럼 침울한 분위기.
비록 趙治勳9단과 린하이펑(林海峯)9단의 두 일본대표가 4강에 합류했을망정 한 사람은 한국인이요,다른 한사람은 중국인(대만국적)이니 그들의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曺9단은 시종일관 밀어붙인 끝에 제자 李昌鎬를 꺾고 올라온 가토9단을 셧아웃시켰으며,중국의 신예 張文東9단과 홍일점 여류기사 華學明7단은 趙.林 두 巨峰을 넘기에는 역시 역부족.
그야말로 新鳩未越嶺(어린 비둘기가 어찌 재를 넘으리오)이었다. 네판의 대국중 가장 팬들의 관심이 쏠렸던 판은 전년도 우승자 劉6단과 고바야시9단의 바둑.
劉6단은 시합 전날 자전거로 보문단지를 일주하며 몸과 마음을가다듬었고 고바야시9단은 대국날 오전6시에 기상해 경관이 빼어난 호텔 주위를 1시간동안 산책했다.
이보다 2시간 늦은 8시에 일어난 劉6단은 간편한 운동복 차림으로 호텔을 나서더니 8시33분에 돌아왔다.
바둑은 劉6단의 포석실패로 고바야시9단에게 우세하게 흘러갔다.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나 고전의 연속이던 劉6단이 마침내 찾아온 천재일우의 호기를 놓치지 않고 대마를 포획함으로써 통쾌한 역전드라마를 연출했다. 그 엄청난 충격에 고바야시9단은 일본으로 돌아갈때까지 식음을 전폐하고 자신의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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