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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거기 그녀가 서 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써니는 내가 입가에 케첩을 묻혀가면서 피자 먹는 모양을 재미있다는듯이 쳐다보고 있었다.써니는 맥주를 조금씩 마실 뿐 피자는 거의 먹지 않았다.집에서 저녁을 먹었다는 거였다.
『써니 너 확실히 말해 봐.』 나는 피자 한쪽을 새로 베어 먹으면서 말을 시켰다.『나 안만나겠다는 말 정말 아니지?』 『아들을 전쟁터에 내보낸 엄마가 있다고 해.늘 아들 걱정 때문에잠도 제대로 못자고 그러는 엄마 말이야.아들은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한 상황이야.그렇다고 말이야 아들이,「어머니 오늘도 죽지 않고 겨우 하루를 넘겼어요」이렇게 편지를 쓰 는 게 옳겠니.』『써니 넌 아들이 아니구 딸이야.』 『좋아,그러면 여군으로 바꾸면 되잖아.』 써니가 말하다가 중간에 싱긋 한번 웃고 계속했다.『하여간 나 같으면 이렇게 편질 쓸 거야.「여긴 후방이라서안전해요 어머니.전 도대체가 싸우고 싶어도 적 다운 적을 만날기회가 없다니까요」.』 『그러니까 너희 엄마에게 한 말은 거짓말이다 이거지?』 『그런 걸 효녀의 거짓말 혹은 심청이의 거짓말이라구 그러는 거야.그렇지만 달수 넌… 나를 다치게 해서는 안돼.알았지?』 난 그게 무슨 뜻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이럴 땐 어떤 거짓말을 해야 하나 참….』 『그리구… 너나중에 대학에 못가고 그러면 그때부턴 진짜로 날 못 볼거야.이건 정말이라구.』 말해놓고 써니가 눈을 크게 뜨고 날 물끄러미바라보았다.
『제발 어른들처럼 그러지마.피자맛 떨어지니까.』 나는 입안의피자 때문에 웅얼웅얼 말했다.
『달수 넌 나중에 뭐가 되고 싶은데…?』 『그냥 아직 안 정했어.』 써니는 그걸 더 말하지는 않았다.
피자값은 써니가 내주었다.밖으로 나왔더니 오는듯 마는듯 비가내리고 있었다.비라기 보다는 떠도는 습기라고 하는 게 맞을 거였다.아직은 아무도 우산을 쓰고 다니지 않았다.우리는 양화대교쪽으로 난 골목길을 걸었다.전에도 가본 길이었 는데 절두산 성당으로 가는 길이었다.
『괜찮은 거야? 또 집에 들어가서 혼나는 거 아니지.』 『우리 엄만 늦게 들어와.』 『…너희 엄만 아주 멋쟁이더라.』 『…….』 『내가 반할 뻔했다구.정말이야.』 『…우리 딴 이야기해.넌 뭐가 될건지 아직 안 정했다구…?』 『골치 아픈 이야긴하지 마.』 써니가 내 옆얼굴을 쳐다보면서 몇 발자국을 걷다가그랬다. 『하고 싶은게 아무 것도 없단 말이야?』 『그건 어른들이나 생각할 문제지.우린 그런 거 모른다구.』 『그럼 너희는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거냐구….』 써니는 우리 악동들이,특히 내가,답답해 죽겠는 모양이었다.써니와 나는 강가에 서 나란히 있었고,내가 혼잣말처럼 계속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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