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횡령 도와주고 진주 목걸이 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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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조사를 받은 신정아씨가 27일 오후 서울 공덕동 서부지검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고액의 목걸이를 주고받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던 박문순(53.여) 성곡미술관장과 신정아씨가 성곡미술관의 자금 횡령 의혹을 놓고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다. 박 관장은 쌍용양회 김석원 명예회장의 부인이다.

신씨가 학예실장이 된 2005년부터 최근까지 세금계산서 허위 작성으로 성곡미술관 운영자금 2억4000만원을 빼돌린 혐의를 놓고 공방이 벌어진 것이다. 26일에 이어 27일 서울서부지검에 소환된 두 사람은 대질신문에서 횡령 혐의에 대한 책임을 서로 상대방에게 떠넘겼다.

신씨는 검찰에서 "내가 성곡미술관에 들어온 대기업 후원금 등 운영자금 일부를 빼돌린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횡령의 공범으로 처벌받는 것을 감수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하지도 않은 일까지 뒤집어쓰고 갈 수는 없다"며 "횡령한 돈은 박 관장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신씨는 횡령 업무를 성실히 수행해 준 대가로 박 관장에게 진주목걸이와 자신이 거주했던 오피스텔 보증금 2000만원을 받은 것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박 관장은 "1800만원짜리 목걸이를 준 것은 사실이지만 횡령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반박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신씨가) 큐레이터로 들어와 대기업 후원금을 많이 모금하는 등 일을 잘해 준 것이 고마워서 목걸이를 준 것이지 돈을 빼돌려 준 대가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오피스텔 보증금에 대해서는 "준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자 신씨는 "전시회 관련 업자와 7000만원짜리 공사 계약을 하면서 1억원짜리 계약서를 작성해 3000만원을 빼돌렸다"며 "먼저 내 돈으로 박 관장에게 3000만원을 준 뒤 미술관 계좌에서 여러 차례로 나눠 몰래 인출했다"고 수법까지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신씨는 "법인 계좌이기 때문에 박 관장 모르게 돈을 빼돌리는 건 불가능하다"며 "대기업 후원금 중 박 관장의 주식 계좌로 직접 들어간 돈도 있다"는 진술도 했다고 한다. 이에 박 관장은 "나의 절대적인 신뢰를 이용해 신씨가 간 크게 해 먹은 것"이라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수사 초기에 오피스텔 보증금을 신씨가 직접 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목걸이도 횡령과 관계없는 물품이라며 일단 신씨가 거짓 진술을 하고 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박 관장이 대기업 후원금을 조달해 온 신씨와 공모해 횡령 과정에 일부분 개입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신씨는 오후 2시40분쯤 비교적 여유 있는 표정으로 검찰청사를 나섰다.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순간 잠시 입 꼬리가 올라갔다. 엷은 미소를 머금기도 했다. '신씨의 미소'를 두고 신씨가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연기될 것을 미리 알아챈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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