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 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우리 악동들이 기도실에서 일주일을 지내는 동안,예수가 한번도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은 건 이상한 일이었다.나는 어쩌면 예수가 나를 의식하고 일부러 기도실에 나타나기를 피하는 게 아닐까하고 속으로 생각했다.난 사실 어느 정도 예수 에게 배반감인지뭔지 그런 걸 느끼고 있었고,그래서 예수가 나타나면 내 심사를어떻게든 전달해볼 참이었다.
예수는 조홍민 성경선생님의 별명이었다.
본명이 예수인 분도 그렇지만,우리 학교의 예수도 어떤 애들 특히 계집애들에게는 무지 인기가 높았고 또 다른 애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다.우리 악동들 중에서 예수를 좋아한 건 나 혼자 뿐이었다.다른 녀석들은 예수를 무조건 전형적인 꼰대 로 취급했다.왜냐하면 예수는 인상부터가 아주 반듯해 보이는 그런 사람이었고,그래서 아주 고리타분한 말이나 해대는 인간으로 찍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오해였다.내가 아는 한 예수는 튀는 사람이었다.예수의 생각들은 아주 신선했고 그러니까 말하자면 파격적인 선생님이라고 나는 생각했다.예수는 진짜 예수처럼 살고 싶은건지 모른다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첫 성경시간에,예수는 각자가 알고 있는 예수님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했는데,내 차례가 됐을 때,나는 예수님을 잘 모르지만 차림새나 머리 기른 걸로 봐서 일종의 옛날 히피같은 분인 것 같다고 그랬다.내 발언이 끝나자 예수가 몇마디 촌 평을 덧붙였다. 『달수는 몇가지 점에서 예수님을 잘 설명했어.아마 우연인것 같기는 하지만.』 사랑과 자유와 평화,이 세 가지가 히피들이 섬겼던 구호인데 이것들은 예수님이 가장 좋아하던 것들이라고했고,거짓과 온갖 위선이 판치던 당시 사회의 기존 질서를 과감하게 깨뜨리고자 했던 점에서도 예수님과 히피는 비슷하다는 거였다. 언젠가는 나는 예수가 이런 글을 써서 말썽났다는 이야기도들었다. 「기도라는 것으로 인간이 욕구불만을 해소한다면 그건 신에 대한 불경일테지만,만약 기도라는 것이 그것조차 아니라면 그건 인간에 대한 모욕이다」.
우리 학교의 예수는 머리도 길지 않았고 말도 많지 않았고 또모범생처럼 답답한 차림을 하고 있었지만,어쩌면 교무실에서 숨쉬는 몇 안되는 우리 편일 거라고 나는 믿어왔던 거였다.그래서 나는 예수를 좋아했고 그러는 나를 예수도 좋아하 는 것 같았다.그런데 예수는 내 기대를 저버린 거였다.
우리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생활지도부 회의에서 예수는 우리를 처벌해야 한다는 쪽으로 아주 적극적인 주장을 폈다는 거였다.말하자면 믿었던 예수에게 발등을 찍힌 셈이라고나 할까.
『전쟁을 빼고 말이지,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의 3분의 2이상이 서로 알고 지내던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거야.놀라운 사실이지.이건 뭐를 말하는 거겠어.한때나마 서로 좋아하는감정을 가졌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면 결국 미움이 켜져서 살의로까지 번진다는 거지.그러니까…우리가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낀다는건 모험인지도 몰라.』 예수 자신이 언젠가 수업시간에 한 말이었다. 나는 어쨌든 기도실에서 보낸 일주일 동안 은근히 예수를기다렸다.그런데 허사였다.그래도 나한테는 한마디쯤 해줄줄 알았는데 실망이었다.예수가 내게 정말 실망했을까봐 그게 걱정이기도하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