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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족 피습사건 당시 치안센터 경찰관 한 명도 없어"

중앙일보

입력

경찰이 최근 전북 정읍에서 잇따라 발생한 살인사건과 관련, 치명적인 허점을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경찰은 정확한 수사도 하지 않은 채 피의자의 진술을 위주로 사건 결과를 발표, 피해 유가족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전북 정읍경찰서는 23일 정읍 정우면에서 일가족 4명 중 2명을 살해하고 2명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김모씨(48)를 검거,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오후 경찰서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사건 발생 이후 3일간 350명이나 인원을 동원해 범인 검거에 나선 결과, 피의자를 조기에 검거할 수 있게 됐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했던 시각, 정우면 치안센터에는 치안 시스템의 지구대 제도 변경에 따라 경찰관이 단 한 명도 근무하지 않았다.

문제는 해당 사건 1시간 이전에 인근에서 다른 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치안센터에 근무자가 없었다는 점이다.

피의자 김씨는 지난 21일 밤 8시40분께 정읍 정우면 권모씨(48)의 집에서 권씨와 조카 한모군(14)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후, 아들(12)까지 수차례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히고 마을의 버스정류장 방향으로 달아났다.

때마침 집으로 돌아오고 있던 권씨의 또 다른 아들(19. 신학대학교 1년)과 마주친 김씨는 권군을 살해하려고 흉기를 든 채 권군을 쫓기 시작했다.

필사적으로 마을 치안센터를 향해 도망을 친 권군은 10여분 후 치안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갔으나, 경찰관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범인은 권군이 치안센터로 들어가자 경찰관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도망가 권군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때문에 이번 사건은 농촌 지역의 경찰 치안시스템이 강력 사건의 경우에는 크게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한 셈이 됐다.

피해자 권씨(48)의 여동생은 "조카가 필사적으로 치안센터까지 도망가서 목숨을 건질 수는 있었지만,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는 곳에 경찰이 한 명도 없었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한 생각이 든다"며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여동생은 또 "먼저 범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중태에 빠진 조카(12)가 112와 119에 수차례 전화를 했는데도 전화를 받지 않았고, 치안센터로 달아난 큰 조카 역시 수차례 신고 후 연결이 돼 경찰은 18분 후에나 현장에 도착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읍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인근의 치안센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운영해 인원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경찰은 "피의자 김씨가 평소 주식 객장에서 만난 권씨에게 3600만원을 빌려줬으나, 권씨가 이를 갚지 않자 격분해 권씨 일가를 살해했다"고 밝혔으나 이 역시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 일고 있다.

권씨의 여동생은 "평소 오빠는 소액으로 주식에 투자하고 있었고 객장에서 만난 김씨에게 00주식을 살 것을 권유해 김씨가 이를 사드려 피해를 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경찰은 오빠가 많은 돈을 빌려 갚지 않은 채무 불량자 쪽으로 몰고 가고 있다"면서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또 "오빠는 평소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형편이 어려운 여동생의 아들까지 키워줄 정도로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수천만원을 빌려놓고 갚지 않을 사람이 결코 아니다"며 "정말로 채무관계가 있었는지는 계좌추적을 통해서라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며 경찰의 허술한 수사에 격분했다.

그는 이어 "경찰은 김씨가 돈을 갚지 않은 것에 격분해 오빠와 조카를 살해한 것으로 밝혔는데 범인은 평소 전등도 없고 도망갈 곳이 없는 집안 한쪽 구석으로 오빠를 불러내 살해했다"며 "의도적으로 범행을 계획하지 않았다면 이처럼 치밀하게 범행을 저지를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경찰은 "아직은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자세한 결과는 나중에 밝히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정읍=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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