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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귀엣말로 "금수산궁전 안 가셔도 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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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다음달 2~4일 열리는 2차 남북 정상회담은 2000년 6월 13~15일 1차 정상회담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번 회담에서 합의문이 나온다면 6·15 공동선언을 발전시키는 내용이 될 전망이다. 의제외 남북 간 쟁점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7년 전이나 지금이나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1차 때는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 참배 문제, 6·15 공동선언 서명 주체 등을 놓고 막후에서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이번에도 엇비슷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1차 회담 직전 대통령 특사로 두 차례 방북하고 정상회담 실무를 총괄했던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통일부 장관·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과의 인터뷰를 통해 1차 회담의 비사(秘史)를 재구성했다. 임 전 원장이 당시 상황을 자세히 밝히기는 처음이다.

◇금수산기념궁전 참배에 집착한 김정일=1차 정상회담 이틀째인 2000년 6월 14일 평양의 목란관(국빈 연회장). 김대중 대통령 주최의 답례 만찬이 열리고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 대통령 옆자리에 앉았다. 만찬 직전에 열린 두 정상 간 회담에서 원칙 합의한 사항들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임동원 국정원장은 만찬 전 남측의 공동선언 초안을 북측에 넘겼고, 북측은 만찬장으로 자신들의 안을 가져오도록 돼 있었다. 그 와중에 김 위원장이 임 원장을 불렀다. 김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 위원장이 임 원장에게 귀엣말을 했다(사진). 합의문 문제가 아니었다. “김 대통령이 금수산기념궁전에 안 가셔도 되겠습니다. 내가 지금 김 대통령을 (백화원 영빈관에서) 차로 모시고 같이 왔는데 ‘안 가셔도 됩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습니다. 임 원장이 이겼어요.” 국내에서 국정원장의 처신 문제로 논란을 부른 이 장면은 김 대통령의 금수산기념궁전 방문 문제 대화였다. 이 문제는 1차 회담 당시 남북 간 최대 막후 쟁점이었다. 남북 정상이 합의문(6·15 공동선언)에 원칙 합의한 후에야 매듭지어졌다. 남북 간 공방이 어떻게 진행됐기에 김 위원장은 임 원장이 이겼다고 얘기했을까.

그 20일 전인 5월 27일. 임 원장은 김 대통령 특사로 방북했다. 정상회담 사전 협의차였다. 임동옥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지난해 사망)이 임 원장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찾아왔다. 임동옥은 김 대통령의 금수산기념궁전 참배를 요구했다. 임 원장은 그 자리에서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임동옥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장군님(김 위원장)을 만날 수 없다”고 되받았다. 임 원장은 ‘내 마음대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임 원장은 김 위원장은 물론 북측 카운터파트인 김용순 통일전선부장(대남담당 비서·2003년 사망)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빈손 귀환이었다.

6월 3일. 임 원장은 다시 방북했다. 숙소는 전과 같은 백화원 영빈관. 수행원은 국정원 국장과 과장 두 명이었다. 임 원장은 이날 김 위원장을 만난다. 장소는 평양이 아니었다. 그날 오후 6시쯤. 임 원장 일행은 평양 북쪽의 순안비행장으로 가서 40여 분 동안 중형 비행기를 탔다. 내린 곳은 평안북도의 한 지역. 임 원장은 다시 승용차로 시골길을 달렸다. 오후 7시쯤. 임 원장은 김 위원장이 기다리고 있던 한 초대소(특각)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임 원장은 김 위원장과 만찬을 포함해 5시간 동안 면담했다. 라운드테이블에서였다. 남쪽에선 수행원 두 명이, 북측에선 김용순과 임동옥이 배석했다.

김 위원장은 김 대통령의 금수산기념궁전 방문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세 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주도면밀했다. 첫째는 “순안공항으로 김 대통령을 마중나갈 테니 같은 차를 타고 금수산기념궁전에 함께 들르자”고 했다. 임 원장은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공항에 영접을 나가지 않고 금수산기념궁전 앞에서 김 대통령을 기다렸다가 함께 방문하는 안을 제시했다. 임 원장은 다시 거부했다. 김 위원장은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김 대통령 방북 둘째날로 예정된 정상회담 직전 방문하자고 했다. 김 위원장 얘기의 요체는 정상회담 전에 반드시 김 대통령이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둘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요지 정리).

“한국전쟁의 앙금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정상회담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논란을 부를 수 있는) 금수산기념궁전 방문은 생략해야 합니다.”(임동원)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되는 방향으로 합시다. 이것은 국가의전입니다. 월남 갈 때는 호찌민 묘소에도 가고, (서울 가면) 현충원을 가고, 미국에 가면 알링턴 묘지를 갑니다. 이곳에 오면 여기(금수산기념궁전)에 다 가는데 왜 안 된다는 말입니까.”(김정일)

“한국민들의 정서를 생각해야 합니다.”(임)

“그러면 우리 북조선 인민들의 정서는 생각하지 않겠다는 거요.”(김)

임 원장은 이 문제에 대한 김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한다.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검토해볼 수 있다는 안이었다. 정상회담의 성과가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이날 면담에서 이 문제는 결론을 보지 못했고, 김 대통령은 6월 13일 평양에 도착한다.
6월 14일 오전 7시30분쯤 남측대표단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 임동옥 부부장이 임 원장을 찾아왔다. 그는 그날 오후 3시로 예정된 김 대통령-김 위원장 간 정상회담 전에 두 정상이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토록 하자고 했다.

“절대 안 됩니다.”(임동원)

“그러면 장군님께 보고를 못합니다.”(임동옥)

임 원장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미리 준비해간 메모를 꺼냈다. “내가 불러줄 테니 받아쓰시오.” 임동옥이 이 문제를 구두로 김 위원장에게 보고할 처지가 안 된다고 본 것이다. “금수산기념궁전에 가면 정상회담의 의의가 없어집니다. 우리 국내의 70%가 반대합니다. 국회가 여소야대인 상황에서 남북 경제협력에 합의해도 예산 승인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것을 실천하는 것이 양쪽을 위해서 이익이 됩니다….” 이 메시지는 임동옥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건의서’형태로 보고됐다고 한다. 결국 정상회담은 금수산기념궁전 방문 없이 이뤄졌다. 그러나 방문 문제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 당초의 남측 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목란관 만찬에서 김 위원장이 임 원장에게 “당신이 이겼어요”라고 한 것은 그 문제가 해결됐다는 얘기였다. 정부는 당시 두 사람의 귓속말이 국내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회담 직후라 전모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임 원장은 “김 대통령의 금수산기념궁전 방문을 막은 그 장면은 역사적인 것으로서 지금도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이 순안공항에 도착한 뒤 트랩을 내려오기 전 정면이 아닌 다른 곳을 먼저 둘러본 것이 이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설에 대해선 “아무런 사전 협의도 없었고, 또 메시지도 없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2차 회담 과정에서 금수산기념궁전 방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다른 행사에서 대체효과를 거두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김정일은 공동선언 서명 꺼렸다=6월 14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백화원 영빈관. 남북 정상은 합의문(6ㆍ15 공동선언) 서명 주체를 누구로 할 것인지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김 위원장이 처음에 “수표(서명)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명 주체에 대해 첫 번째로 남쪽에서 임 원장이, 북쪽에서 김용순이 서명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상부의 뜻을 받들어’라는 구절을 넣으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김 대통령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서명안을 내놓았다. 헌법에는 자신이 아니라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하는 것으로 돼 있다고 했다. 김 대통령은 “안 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세 번째로 아무런 직책을 명기하지 않고 그냥 ‘김대중과 김정일’로 서명하는 안을 꺼냈다. 역시 거부당했다. 이 문제는 결국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사진)로 매듭됐다. 서명 주체 부분은 2차 회담에서도 주목거리다. 북측은 6ㆍ15 공동선언을 남북관계의 장전(章典)으로 삼는 만큼 이번의 합의문을 그 후속으로 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왜 하루 연기됐나=1차 회담의 당초 일정은 6월 12~14일이었다. 북측은 6월 10일 전화통지문을 보내 일정을 하루 연기하자고 제의했고, 남측은 이를 수용했다. 회담 일정 연기는 대북 송금이 지연됐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그러나 임 원장은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6월 3일 김 위원장과의 다섯 시간 면담으로 미뤄볼 때 그의 경호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단정했다. 이 면담에서 김 위원장은 김 대통령의 서해 직항로 방문에 대한 남한 언론의 상세한 보도에 매우 불쾌해했다고 한다. 다음은 대화 요지.

“ㄷ자 항공로를 그려놓고 출발·도착시간까지 다 보도했는데 보안을 유지해야 하지 않습니까. 국가원수가 다니는데 방해책동을 하는 분자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무책임합니까.”(김정일)

“그렇지 않습니다.”(임동원)

“회담을 하루 앞당기든지 하루 늦춥시다. 하루 이틀 전에 갑자기 그렇게 해야 (피해를 가하려는 자들이) 놀라서 어떻게 할지 모릅니다.”(김)

“회담 준비 관계상 앞당기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임)

임 원장은 “공항에서 김 대통령을 영접할 생각을 갖고 있던 김 위원장이 자신의 경호문제로 그런 반응을 보인 것으로 느꼈다”며 “회담 직전 연기 통보를 접하고 김 위원장이 공항에 틀림없이 나올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회담 연기에 대해선 2003년 6월 ‘대북 송금의혹 사건’ 특별검사팀도 경호상의 문제 때문이라는 수사 결과를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의 공항 영접은 당시 면담에서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김 대통령이 오시면 공화국 역사 이래 최대의 환영행사를 해 드리겠다. 과거 장쩌민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왔을 때 최고로 해 드렸는데 그보다 더 성대하게 모시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장쩌민은 1990년 3월 방북했으며, 당시 순안공항에는 김일성 주석이 마중을 나왔고 50만 명의 평양 시민이 연도에서 그를 환영했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과의 인터뷰는 9월 30일자 중앙SUNDAY Special Report에 다른 주제로 소개됩니다.

오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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