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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생활새풍속>11.자기계발이 필수-일 끝나면 곧장 학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S그룹 사무실의 퇴근 무렵.
K부장:『이봐,다들 끝나고 한 잔 어때?』 사원A:『안되겠는데요.중국어학원 가는 날입니다.』 사원B:『저도 단소 배우러 가야돼서요.』 L과장:(우물쭈물)『저는 컴퓨터 공부 때문에….
』 순간 머쓱해진 K부장.15년이상 직장을 다니면서「자기개발은선택,술은 필수」로 살아온 그는 요즘 퇴근후 각자 제 공부하러뿔뿔이 흩어지는 부하직원들을 보면 한편 이해가 가면서도 섭섭한마음이 든다.
L과장의 마음은 더 답답하다.무섭게 치받는 후배들 따라가랴,선배들 입맛 맞추랴 갈피를 못잡는 그에겐「술도 필수,자기개발도필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과 술.직장인들에게 떼어놓을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던 그 고리가 끊어지고 있다.「술 권하는 직장」에서「공부 권하는 직장」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와 영어를 필수로 무장한 신세대 직장인들이 시대의 변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능동적으로 자기개발에 나서고 있는반면 30,40대 직장인들은 자기개발의 멍에에 옥죄어 있다.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상사가 하는 일 없이 자리를 지킬 경우『상사에게 퇴근시간임을 알리고 먼저 퇴근하겠다』는 당찬 신세대 직장인들(쌍용그룹 설문조사 결과 1백명중 78명).그들중 38명은 술을 싫어하는데 상사가 술을 살 경우『술 을 좋아하지않는다고 밝히고 거부하겠다』고 말한다.
광고대행사인 코래드에서 사보를 맡고 있는 張敬善씨(31)는『확실한 자기 분야를 갖기 위해 대학원까지 다니는 동료들이 많다』며『외국어학원.수영장.동아리 모임등 열심히 자기를 가꾸어 나가는 우리 신세대 직장인들에겐 자아실현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라고 말한다.
취업정보지「인턴」이 올 대졸 신입사원 8백67명을 대상으로 업무외 시간활용 방법을 조사한 결과 51.1%가 어학 공부,36.3%가 스포츠.취미생활을 들었다.
신세대직장인들은 점심시간마저 그냥 보내지않는다.햄버거나 도시락등으로 부리나케 점심을 때우고 학원.헬스클럽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흔히 볼수 있게 됐다.
1년전부터 인근 오성수영장에 다니고 있는 쌍용그룹의 金모씨(33)는『처음 며칠동안은 피곤해 오후일 하기가 좀 힘들었지만 이제는 수영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능률이 나지않을 정도』라며 커피마시며 잡담하는 동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 한다.
국제화에 대비해 어학 전문학원에 사원 위탁교육을 의뢰,출석.
성적표를 통보받아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직장 중견 간부들의 어색한 만남도 적지 않다.
『전엔 이 시간이면 얼큰히 취해 2차 갈 사람을 추리고 있을텐데 여기에서 후배들과 공부해야하니 쑥스럽기만해요.이 나이에 영어회화를 배워봐야 어디에 쓰겠다고…그렇지만 안할 수도 없고….』 오후9시부터 1주일에 두 번 종로 K영어학원에서 후배들과함께 영어회화를 배운다는 M백화점 李모씨(46)는 말꼬리를 흐린다. 처음부터「술은 선택,자기개발은 필수」를 선언하고 나선 신세대 직장인이 늘어나면서 일과 술,그 자연스러운(?)균형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택시할증료를 내고 집문을 두드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酒黨보다 1차에서 깨끗이 헤어지는「走黨」이 늘어나고 있다(한국갤럽 조사결과 전국 성인남녀 1천5백명중 52.3%가 1차만 간다고 대답). 이처럼 퇴근후 직원들의 관계가 소원해지자 일부 기업에서는「열림 마당」「오픈데이」등의 이름으로 매주 또는 격주로 특정한 날에 회사 인근 호프집에서 직원이면 누구나 무료로 맥주를 마시며 조기출퇴근등으로 얼굴 보기 힘들어진 동료들과 이 야기를나눌수 있도록 술자리까지 마련해주고 있는 형편이다.
〈金承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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