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핵폐기장 건설 부지찾기 6년-정부대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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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설득이냐,강행이냐」.지난 6년여동안 어지간히 정부의 골머리를 썩여왔던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확보문제가 그 추진방식을 놓고다시 갈림길에 섰다.韓榮成과기처차관은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그간의 과기처 단독추진방식에서 벗어나 범정부 차원에서 처분장을 확보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이는 부지확보가 여의치 않을 경우 강제수용등의 방식을 통해서라도 국가적 현안인 이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韓차관은 이어 고위관계당국자간에 이 문제에 관한 심도있는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며 조만간 범정부협의체 구성 등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이에앞서 과기처는 1일 경북 울진지역에서 핵폐기장 설치를 반대하는 시위가 연일 계속되자 이 지역에『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건설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공식통보한 바 있다.과기처의 이같은 대처방식은 과거 안면도 사태때처럼 『정부가유치 찬.반 주민간의 갈등과 불신만을 키운채 뒤로 물러선다』는비난을 사기도 했다.울진사태와 이에따른 정부의 방침변화를 중심으로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건설과 관련한 그간의 경과와 문제점을짚어보고 앞으로의 전개방향등을 전망해 본다.
울진사태와 이보다 며칠 앞서 벌어진 경남 양산의 시위사태는 사실 돌발적이라기보다 예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선정작업은 총선.대선등과 긴박하게 맞물리며 지진부진,추진 되는둥 마는둥 했다.
지난해초 金泳三대통령의 정권인수위가 6共의 미해결사업을 물려받으면서 내심 가장 불만을 품은 대목이 바로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확보문제였다고 전해질 만큼 이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다. 따라서 정부의 관계자.원자력 전문가들은 「선거 공백기」인 올해 강력히 추진하지 않으면 처분장 선정작업은 최소한 문민정부하에서는 물건너 간 것과 다름없다는 말을 공공연히 해왔다.
과기처가 지난 2월말 S신문등 3개 일간지를 통해 「원자력부산물 관리사업 시범유치지역 지원계획」이라는 큼지막한 공고를 내면서 그간 물밑에서 추진해온 처분장 사업을 수면으로 끌어올린 것은 바로 이런 배경이 작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만한 대목은 과기처가 부산을 비롯한 영남의 동남부 일대에 영향력이 있는 2개의 일간지를 택해 공고를냈다는 사실이다.이는 과기처가 양산.울진지역에서 처분장을 유치하려는 움직임을 사전에 간파했거나 유치를 추진하 는 주민측과 사전조율이 있었음을 의미한다는 주장도 있다.
일부에서 이번 울진.장안사태와 관련해 과기처가 「밀실행정」의구태를 못벗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있다. 金始中과기처장관은 처분장 부지선정과 관련,틈나는 대로 『주민 동의하에 공개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그러나 金장관의 이같은 장담은 정부가 「강행」쪽에 비중을둠으로써 더 이상 지켜지기 힘든 상황이 됐다.과기처는 지난 88년말 동해안 3개지역을 시작으로 처분장 선정작업을 추진해 왔지만 5년반이 넘도록 이 사업이 일보의 진전도 없자 ,정부안팎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안면도에 이어 이번 울진에서도일부 주민들이 반대하자 마치 각서를 쓰듯 물러서 「반대시위만 하면 정부가 물러서더라」는 모양새 나쁜 선례만 연거푸 남긴 꼴이 됐다.
처분장을 둘러싼 과기처의 정책이 이같이 표류를 거듭하자 정부일각에서는 물론 국민들까지 부지 선정작업을 이대로 과기처에 맡겨서는 안된다는 강한 회의론이 공감을 얻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과기처는 그간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원자력연구소에 원자력환경관리센터를 두고 이 사업을 추진해 왔다.일선에서 처분장 마련을 위해 홍보작업을 벌이고,주민들과 대화를 이끌어온 것은 대부분 이 센터의 석.박사연구원들이었다.
지방의회가 반대하고 지방관청도 맡기 싫어하는 처분장 선정작업을 아무런 행정력도 없는 연구원들에게 떠맡기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애초부터 제기돼 왔다.
안면도 사태때부터 부지 확보사업에 관여해온 한 책임자급 연구원은 『90년 이후 안면도에서 경북 영일로, 영일에서 강원 고성으로 계속 쫓겨다니면서 연구소가 처분장 선정작업의 적격자인지회의가 들때가 많았다』고 고백했다.그는 주민 9 0%가 찬성해도 나머지 10%가 들고 일어나면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는 것이지금까지 선정작업에서 얻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과학적으로 처분장의 안전성을 설명하고 주민들이 이를 이해해도실제 손발인 행정력이 없이는 추진될 수 없는 것이 이 사업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처분장 사업이 그간 지진부진했다 해서 과기처에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盧정권시절인 90년 당시 경북지사는 이 사업을 추진하는 연구소 관계자들을 불러 극도의 불쾌감을 표하기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일 선 행정력이없는 과기처(연구소)가 행정기관의 도움을 받기는커녕 자료협조조차도 외면당해온 실정에서 처분장 부지확보는 애당초 불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정부는 「매우」 뒤늦게 범부처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방침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부처 협의체를 만들고,관계부처로 과기처.상공자원부.내무부 등은 물론 법무부까지 포함한 것은 한편으로는 최악의 반발에 부닥치더라도 강행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도 풀이된다.
방사선 폐기물처분장 선정에 관한 정부의 방침이 이 같이 급선회함으로써 적지않은 파문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따라서 정부는 일관된 정책기조하에서 對 국민설득 노력과 함께 일부 환경단체들에의해 대두된 핵 공포감 충동을 해소시키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특히 폐기물 처분장 예정지역보다 인근지역 주민들이 더 맹렬히반대하는 지금까지의 관행에 대해서도 철저한 대응책을 세워야 할것으로 보인다.
〈金昶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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