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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당구장 집 아들, 3쿠션 세계 챔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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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행직이 이상천의 대를 이었다’.

세계 3쿠션 당구계를 호령했던 고(故) 이상천 전 대한당구연맹 회장 이후 14년 만에 세계를 제패한 한국의 당구 신동이 탄생했다. 수원 매탄고 1학년 김행직(15·사진)군은 16일 스페인 로스 알카사레스에서 끝난 세계주니어(21세 이하) 3쿠션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한국 선수가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구나 15세는 역대 우승자 중 최연소다. 성인을 통털어도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은 이상천 전 회장이 당구월드컵협회(BWA) 3쿠션 월드컵에서 1992년과 93년 두 차례 우승한 것이 전부다.

김 군은 한국 당구계에서 드물게 ‘조기 교육’을 받은 선수다. 기존 선수 대부분은 성인이 된 이후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했지만, 김군은 아버지(김연구·37)가 당구장을 운영한 덕에 6살 때부터 큐를 잡아 중1 때 선수로 등록했다. 김씨는 “행직이가 초등학생 때 당구장을 찾은 대학생들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할 만큼 소질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들을 프로 선수에게 데려가 지도를 받게 했고, 나태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엄하게 꾸짖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미성년자가 당구장을 출입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던 시절이었다.

“아이가 똑똑해서 공부를 시켰어도 잘 했겠지만 워낙 당구를 좋아하는 데다 잘 쳐서 사회적인 체면을 포기하고 아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습니다.”

김군의 최대 강점은 집중력이다. 하윤보 경기도 당구연맹회장은 “나이가 들면 공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수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어릴 때부터 당구를 접한 행직이는 당구 메커니즘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집중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행직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도 집중력이 탁월한 다니엘 산체스(스페인)다. 김군은 “이번 대회 예선에선 부진했는데 경기를 거듭할수록 집중력이 좋아졌다”며 “당구는 내 생활의 전부고, 세계챔피언 이외의 인생 목표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김군은 전북 익산 출신이지만 수원 매탄고에 다니고 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당구부가 있기 때문이다. 매탄고는 지난해 교육청으로부터 특기종목 인가를 받아 올 6월 당구부를 개설했다. 이 학교 홍장표 교장은 “당구는 고가의 장비가 필요없고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돼 중·고교에서 운영하기 안성맞춤인 스포츠”라며 “다른 학교에서 선택하지 않는 점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김 군은 학교 수업이 끝난 뒤 당구부 동료 4명과 함께 훈련을 해왔으며, 세계선수권을 앞두고는 서울 역삼동 국가대표 훈련장을 찾아가 성인 대표들과 함께 스리쿠션 기술을 갈고 닦았다.

한국 당구계에는 현재 400명의 등록선수가 있으나 프로가 따로 없다. 대회 상금으로 생활할 규모가 되지 않아 모든 선수들이 따로 생업을 가지고 있다. 외국의 경우도 3쿠션 종목은 시장이 많이 위축돼 영세한 실정이다.

글=이충형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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