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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군과 마클 이병(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주한 싱가포르 대사가 한국신문에 정정기사를 요청했다. 태형을 당한 미국 소년 페이군의 엉덩이가 찢기고 피를 흘렸다는 로이터통신 보도는 잘못이고,이를 인용한 한국신문도 사실과 다른 보도를 했으니 고쳐달라는 주문이었다.
문제의 태형은 지난 5월5일 집행되었다. 클린턴 미 대통령의 「간곡한 요청」을 감안해 6대를 4대로 줄였을 뿐이다. 이 페이군의 범죄란게 우리 기준으로 보면 별 것 아니다. 남의 승용차에 페인트를 칠한 죄다. 여기에 징역 4개월,태형 6대,벌금 3천5백싱가포르달러의 선고가 내려졌다. 이후 싱가포르에 대한 미국의 압력이 여러형태로 나타났다. 태형이란 야만적 형벌이라는 여론이 외교채널 또는 미국여론으로 들끓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나서고 외교관이 동원되면서 미국이라는 대국의 자존심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의연히 자신들의 법에 따라 형을 집행했다.
동두천 접대부 윤금이씨 살해범으로 15년형이 확정된 미군 마클 이병이 최근 미국 대법원장 앞으로 청원서를 냈다. 한국측에 자신의 신병이 넘겨질 경우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아달라는 것이다.
윤금이씨 살해사건은 미군이 저지른 가장 잔인한 범죄중 하나였다. 만취한 마클이 윤씨의 머리를 콜라병으로 치고 실시한 여인을 우산으로 찔러 숨지게 하는 극도로 잔인한 폭행사건이었다. 때문에 윤여인의 원한을 갚아야 한다는 대책위가 만들어지면서 한때 미군기지 일대에 금족령이 내려질 만큼 살벌한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윤금이씨 사건은 불쌍한 한 여인의 죽음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4만여건의 미군 범죄중 국내에서 재판권을 행사한 것은 1백여건에 불과하다고 그나마 우리 교도소에서 형이 집행된 사례는 극히 적다는 양국간 불평등 협정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형편에 마클 이병의 형집행은 한미행협의 새장을 여는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바로 이때 마클 이병은 자신의 신병인도를 거부하는 청원을 미국법원에 내놓고 있다.
페이군이 자동차에 더러운 페인트칠을 했다면 마클은 한국여인을 짓밟고 지극히 잔인한 방법으로 숨지게 한 살인범이다. 마클 이병에 대한 형집행이 양국의 자존심을 건 싸움으로 번져서는 결코 안된다. 다만 마클 이병에 대한 형집행은 한국내의 미군 범죄를 막는 일벌백계의 한 방식으로서,무고한 여인을 죽인 살인범에 대한 징벌로서 원칙대로 이 땅에서 집행되는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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