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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뿌리 없는 후보로는 대선 승리 불가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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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07면

신동연 기자

만난 사람=최훈 정치 에디터

대통합민주신당 예비후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평가해 보라고 하자 정 후보는 윗옷을 벗고 소매를 걷어붙였다. 차분했던 목소리가 빨라지고 높아졌다. 부드러운 표정과 특유의 유머도 사라졌다.

-피곤해 보인다.

“고단하다. 그래도 사람이 ‘기(氣)’로 사는 건데…. 이번 주말 경선(제주·울산·강원·충북)에서 이기면 좀 보충이 될 것 같다.” (※ 그는 15일 제주·울산 경선에서 1위를 차지했다.)

-예비 경선에선 0.3%포인트라는 간발의 차이로 2위를 했는데.

“내용에선 이긴 경선이라고 생각한다. 그 직전까지 손학규 대세론… 뭐 이렇게 얘기하려고 했지 않나. 그런데 그게 깨졌다. (일반 국민) 여론조사는 항상 앞서 있다고 자신하더니 그것도 별것 아니었고. 국민이 ‘어, 정동영이 될 수도 있겠구나’ 이런 느낌을 받지 않았겠나.”

-본경선은 어떻게 될 것 같나.

“정동영의 필승구도라고 생각한다.”

-근거가 뭔가.

“국민 눈높이에서 결정적 하자가 없다. 또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만든 열정, 그 지지자들을 모아내는 내부 결속력이다. 그런 뿌리와 정통성 없이는 (승리가) 불가능하다. 물론 그 뿌리·정통성이 새장 안에 갇혀 있다면 또 한계가 있겠지만.”

-김대중(DJ) 전 대통령 지지자 중에는 정 후보가 민주당 분당을 주도한 것을 비판하는 사람이 많은데.

“민주세력이 결과적으로 분열된 데 대해 안타까움이 있다. 그래서 한나라당이 다시 살아났다. 그 점에 대해 거듭 사과한다. 책임을 다하는 것은 12월 대선에서 다시 승리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들은 정 후보가 최근 노 대통령과 다른 길을 걷는 것을 공격하고 있다.

“노 대통령과는 정치적 동지였고 협력자였다. 외교·안보·통일 분야에서 전폭적인 신뢰를 해줬다. 굉장히 감사하다. 그러나 아무리 이 분야에서 뭘 만들어내면 뭐하나. 결국 정권이 넘어가면 다 무화(無化)되는 건데. 정동영의 판단은 다시 대통합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 지점에서 (노 대통령과) 충돌했다. 누가 옳았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대통합을 통해 대선에서 승리하면 정동영의 판단·노선이 맞은 걸로 증명이 될 거다.”

-국민 여론조사를 10% 반영하는 경선 룰이 확정됐다. 불리해진 것 아닌가.

“불리하지 않다. 한나라당 지지자를 빼고 대통합민주신당 지지자를 상대로 한 여론조사이기 때문에 그렇다. 다만 원칙·합의 위반이라 받아들일 수 없어 밤새 고민했다. 그런데 당이 너무 취약하고 위기에 빠졌다. 그래서 수용했다.”

-당내에서 정 후보의 조직이 가장 강하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까지 조직으로 선거를 해본 일이 없다. 늘 명분과 바람으로 했다. 조직엔 필수적으로 돈이 든다. 돈으로 유지하지 않는 조직은 조직이 아니다. 그건 자발적 지지자인 ‘서포터스’다. 5년 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16개 시·도를 완주했다. 매번 깨지면서 후보인 저와 같이 부둥켜안고 울었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번이 두 번째 국민경선 도전인데 소감이 어떤가.

“5년 전엔 정말 고통스러웠다. 그걸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넘어질 수 없다는 오기였다. 그리고 내가 국민경선을 만들었다는 명분…. 내가 국민경선 주창할 때 노무현 후보가 찬성했나, 이인제 후보가 찬성했나. 다들 체육관에 1만 명 모아놓고 후보 될 생각 했지. 당시 당을 생각한 사람은 정동영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해놓고 먼저 떠났다는 비판도 있다.

“예스맨들이 하는 소리다. 열린우리당은 2·14 전당대회에서 사실상 정치적 해체 결의를 했다. 누구 때문에 했나. (책상을 세 번 내리치며) 정동영이 결단한다고 하니까 한 것이다. 전당대회에서 정한 4개월 시한을 넘겼는데 주저앉아 당을 사수하는 것이 대의는 아니다. 그래서 (신당이라는) 구명선을 만들었고 모두 올라탔다. 절대 안 타겠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아무 설명 없이 옮겨 탔다. 뱃삯을 내놓으라고는 안 하겠지만 (친노 세력이) 투덜거리는 것은 그만둬야 한다. 지금 배에다 송곳으로 구멍을 내는 것 아닌가. 배가 가라앉으면 어떡하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이 후보는 철저히 기득권적이다. 살아온 족적이 모두 시장경제에 반한다. 돈 봉투 들고 로비해서 건설공사 따고… 반칙이다. 국회의원 선거도 돈 봉투 뿌려서 종로 국회의원 딴 것 아닌가. 역시 반칙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지난 30년간 기업인 출신 최고지도자가 한 사람 있다.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다. 결국 (선거에 지고) 쫓겨났다, 독직(瀆職)으로…. 이 후보가 경제전문가라는데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밑에 있을 때 잘나갔지, 정 명예회장 벗어나서는 번번이 실패했다.”

-정 후보가 이 후보의 대항마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뭔가.

“이 후보는 청계천 가지고 살아난 것 아닌가. 그런데 청계천은 밥이 아니다. 개성공단이 우리가 먹고살 밥이다. 이 후보가 연 7% 성장하겠다는데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7% 성장할 만한 잠재성장력을 갖춰야 할 것 아닌가. 잠재성장력 확충에 대한 답을 가진 후보는 정동영밖에 없다. 양질의 북한 노동력과 한국 경제를 결합시키는 것. 이것이 ‘정주영 비전’인데 나는 이게 맞다고 본다.”

-그럼에도 정 후보의 지지율은 오르지 않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기업 주식 저평가)가 있고, 정동영 디스카운트도 있는 것 같다. 실제 가치보다 저평가되고 있다. 전자는 핵문제 해결 전망과 함께 걷힐 것이다. 후자도 일대일 구도가 되면 그런 상황에서 좀 벗어날 것으로 본다.”

-손학규 후보 측 일부 인사는 호남 출신의 정 후보가 본선 후보가 되면 영·호남 대결 구도가 부활해 필패라는데.

“유시민 후보가 (DJ가 당선된) 1997년 대선을 앞두고 DJ의 당선이 불가능하다고 한 적이 있다, 호남 후보여서…. 그때도 별의별 해괴한 이론이 있었다. 나는 이번에 부산에서 5년 전 노무현 후보가 받았던 표보다 더 받을 자신이 있다. 빚 받으러 왔다고 얘기할 자격이 있지 않나.”

-젊은 시절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귀공자풍의 외모 때문에 국민은 그렇게 보지 않는 것 같다.

“귀공자가 다 얼어죽었나 보다(웃음). 고생한 게 자랑은 아니다. 다만 TV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없는 사람들 심정을 저 사람이 알까’ 하는 것은 있는 것 같다. 유년 시절은 유복했다. 17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편이 어려워졌다. 집에서 옷을 만들어 보따리를 메고 동대문시장에 가서 이 가게, 저 가게 팔러 다니기도 했다.”

-결혼할 때 처가에서 반대가 심했다던데.

“내가 딸을 뒀어도 안 줬을 거다. 홀어머니에, 장남에, 가난한 집에…. 처음에 가서 딸 달라고 할 때는 대학 복학생 신분이었다. 방송기자가 된 것도 취직을 해야 다시 한번 시도라도 해보겠다 싶어서였다.”

-본인도 기자 출신이고 캠프에도 기자 출신 의원이 많은데 기자 출신 정치인의 강점과 약점은.

“기자 출신이 교수 출신보다는 대통령감으로 낫지 않을까(웃음). 장점은 역시 남의 얘기를 잘 듣는 것 아니겠나. 단점은 매사를 객관화해서 관찰자 입장에서 본다는 것이다.”

-방송기자·앵커·국회의원·대변인·여당 의장·통일부 장관 등 경력이 다양하다. 가장 애착이 가는 직함은 뭔가.

“통일부 장관과 당 의장이다. 2004년 처음으로 열린우리당 의장이 됐을 때는 사실 신이 났다. 당선 한 달 만에 정당 지지도 1등이 됐다. 그게 기화가 돼서 탄핵으로 이어졌다. 총선에서 만들어진 과반 의석 정당을 이끌고 한 2년 진짜 집권여당을 운영해 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거 못한 대신 통일부 장관 가서 열심히 일했다. 9·19 합의와 개성공단을 나 혼자 했다고 할 순 없지만 선두에 서서 해냈다는 자부심이 있다.”

-만일 당선되면 어떤 대통령이 되고 싶나.

“감성적이고 따뜻한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다. 대통령의 생각을 강요하기보다 국민의 가슴속에 있는 지혜·욕구를 잘 헤아려야 한다. 지난 5년간 신설된 세금은 종합부동산세밖에 없지만 과표 현실화 등으로 세금의 무게가 무거워지고 사교육비 부담도 크게 늘었다. 이런 아우성이 터져나오는데 이걸 못 들었다. 내가 재경부 장관은 아니었지만 정치인으로서 민생문제에 대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솔직히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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