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벌목공들/한국망명은 북한가족 안전에 부담/「러」안전 더 원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신분보장되면 남아서 장사”/일부는 탈출자 아닌 외화벌이꾼도/현지 대사관 관계자들 분석
【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러시아의 북한 탈출 벌목공 한국 송환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김영삼대통령이 발언에 대해 모스크바 현지에서는 이제야 정부가 제대로 상황인식을 하기 시작했다며 환영하고 있다.
현지에서는 벌목공과 관련된 그동안 서울의 각종 보도들이 러시아 현지의 상황과는 너무 큰 괴리가 있다고 지적해왔다.
한국 정책당국자들을 인용해 「북한 붕괴조짐」이라든지,수백명의 벌목공들이 한국 망명을 갈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서울 보도들은 모스크바 주재 공관원이나 3년여동안 벌목공 문제를 관찰해온 현지 특파원들을 몹시 당황케 했다.
이 보도들은 마치 탈출 벌목공들이 모두 한국망명을 희망하고 있으며,이들의 탈출동기가 자유와 김일성 정권에 대한 환멸 때문이라는 식으로 도식화했으나 현지 실정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더구나 복잡한 외교문제를 상대방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채 마치 국내 문제를 다루듯 한국정부가 이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는 식의 접근방식이 취해진 것도 현지 상황의 오해에서 빚어진 셈이다.
3년전 한국 언론은 북한 벌목노동자들에 대한 인권문제를 제기해 93년 제네바 유엔인권위에서 이 문제를 상정시키고 러시아가 대북 벌목협정에 인권조항을 삽입하는 새로운 성과를 거두었다.
당시에도 탈출 벌목공들이 모스크바 등지의 한국공관이나 기업체·교회 등을 찾아 도움을 호소하는 적도 있었고 이들중 일부는 현지 「고려인」 여인들이나 러시아 여인들과 결혼해 거주허가를 얻었으며,일부는 한국으로의 탈출에 성공하기도 했다.
지난 3년여동안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토크·알마아타 등지에 있는 한국공관에 찾아온 벌목공의 누계는 모두 1백70여명. 그러나 여기에는 상당수 중복인원이 있을 것으로 현지 공관은 추정하고 있다.
또 이 가운데는 북한 벌목공으로 나왔다 벌목공 감독관들과 짜고 장사 등을 하면서 구 소련전역을 떠돌아다니던 「외화벌이꾼」도 상당수 섞여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러시아의 일간지 시보드냐지는 최근 벌목장 문제에 대해 심층 진단을 하고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신문은 이들 외화벌이꾼들은 힘든 벌목장보다 훨씬 쉽게 돈을 벌기 위해 하바로프스크지역의 러시아인 공장이나 집단농장 등에서 일당을 받고 일하거나 아예 벌목장으로의 귀한일자를 무시한채 러시아 내지로 도망을 쳐 신분보장을 위해 러시아 여인과 위장결혼을 한다고 보도했다.
따라서 극소수를 제외한 탈출 벌목공들은 북한에 남아있는 부모 형제들에게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한국망명보다는 신분보장만 된다면 러시아에서 장사 등 사업에 종사하려는 것으로 대사관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 한국의 일부 언론에 출현,눈물로 호소를 한 탈출 벌목공중에는 최근까지도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편지를 교환하는 등 신분과 목적이 불분명한 사람들도 섞여있는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모스크바 현지에서는 이 문제를 정부가 해결할 의사가 진정으로 있다면 김 대통령의 방러전에 『단 몇명이라도 데려가야겠다』는 식이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이 문제가 북한과의 대화를 어렵게 하는 난제로 등장하지 않도록 보다 더 현장조사를 면밀히 한 다음 대책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