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텔레콤 쌓이는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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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동통신업계의 후발 사업자인 LG텔레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7월 말 3세대 유럽방식 이동통신(WCDMA) 사업권을 반납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남용(현 LG전자 부회장) 사장이 물러난 뒤 사활을 걸다시피 매달린 리비전A 서비스의 식별번호가 ‘010’으로 정해지자 한숨을 짓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동영상 통화가 가능한 리비전A 서비스 준비를 한 LG텔레콤은 010이 아닌 019 번호로 가입자를 유치해 SK텔레콤과 KTF의 3세대 서비스에 대항하려 했다. 기존 식별번호를 바꾸기를 싫어하는 고객층엔 충분히 먹혀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정일재 사장이 지난달 말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실을 직접 찾아 리비전A 식별번호와 관련한 협조를 요청하는 등 막바지 노력을 기울였지만 모두 허사였다. 유영환 정보통신부 장관이 최근 “리비전A 서비스도 010 번호를 써야 한다”고 못을 박아 버렸다. LG텔레콤의 고민은 010 식별번호를 쓰면 경쟁사의 3세대 서비스와 경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리비전A는 미국·중국·태국 등 11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신의 휴대전화 단말기를 그대로 들고 나가 쓰는 자동 로밍을 할 수 없고, 데이터 전송 속도마저 경쟁사의 3세대 서비스보다 처지기 때문이다.

LG텔레콤은 또 정통부가 최근 1위 이동통신사업자인 SK텔레콤의 망 내 할인을 허용하겠다고 밝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망 내 할인은 같은 회사 가입자끼리의 통화 요금을 깎아주는 것으로 가입자가 많을수록 요금 인하 효과가 크다. 따라서 3위 사업자인 LG텔레콤으로선 여간 부담되는 것이 아니다. 1998~2001년 SK텔레콤과 KTF가 망 내 할인을 했을 때 LG텔레콤은 이를 도입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내환(內患)까지 겹쳤다. LG텔레콤은 2분기 명지건설 기업어음(CP)에 223억원을 투자했다가 98억원을 손실 처리했다. 명지건설의 신용도가 떨어지면서 만기 때 돈을 받을 가능성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회사가 보유한 1900여억원의 채권 중 상당수가 건설사와 관련한 채권이다.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면 보유 채권이 부실화할 우려가 있다. LG텔레콤 측은 “다른 채권의 경우 우량 채권으로 충분히 회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통신회사가 특정 분야의 채권에 지나치게 투자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적잖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LG텔레콤은 후발주자로서 정부의 보호정책에 안주한 측면도 있었다”며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일본의 소프트뱅크 모바일이 최근 망 내 무료 통화 등 혁신적인 상품을 내놔 일본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것을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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