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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약정경쟁이 화 불러/증권사 차장 살인방화극 전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고객구좌 임의운영… 한때 수신고 월 백억대/집 팔아 손실 보상하고 비닐하우스서 생활
선경증권 김원철차장(41·경기도 하남시 풍산동)의 방화동반살인 사건은 우리나라 증권업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증권사간의 과도한 약정경쟁과 이에 따라 불법 임의·일임매매가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증권사의 「꽃」인 본점 차장으로 수신고 역시 본점에서 상위권인 증권사 차장이 수신고를 높이기 위해 고객의 계좌를 임의로 운영하다 오히려 손실이 발생,고객이 증권감독원에 이를 문제삼자 죽음의 길을 택한 것이다.
6일 오후 11시40분쯤 서울 송파구 송파1동 호림빌라 나동 지하 102호 최칠곤씨(40·세운상가 전자대리점 경영) 집 현관에 신나를 뿌리고 불을 질러 최씨와 함께 불에 타 숨진 김씨는 동방증권·태평양증권·선경증권 등에서 9년째 근무해온 베테랑 증권사 영업사원.
한창때만 해도 월 1백억원의 수신고를 올릴 정도로 「톱클라스」 영업사원이었던 김씨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약정고경쟁에서 비롯됐다.
김씨는 89년말∼90년의 주식폭락때 손실을 항의하는 고객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팔아 보상금을 주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김씨가 그동안 고객의 손실보상을 위해 처분한 재산은 ▲고덕동 18평짜리 연립주택 ▲송파동 1억5천만원짜리 반도아파트 ▲우리사주 매도금액 3억5천만원 등 6억∼7억원.
김씨는 또 지난해 고객의 동의없이 고객이 예탁한 주식을 임의로 사고팔다 주가가 폭락하자 투자손실액 보전을 위해 회사로부터 최근 5개월분의 월급(월 3백여만원)까지 차압당했다.
김씨는 이 바람에 경기도 하남시 전세를 전전하다 지난해초 경기도 하남시 풍산동의 한 비닐하우스로 밀려났다. 15평짜리 비닐하우스에는 부인(42)과 대학 1년생 아들(20)이 살고 있으며 부인은 비닐하우스 주인이 경영하는 분재일을 돕는 대가로 무상입주해 있다.
김씨는 특히 최근 고객인 유모씨로부터 1억여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까지 당했고 10여명으로부터 손실을 항의하는 진정이 회사 또는 증감원으로 접수되자 심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특히 지난해 6월부터 3천만원을 예탁받아 자신이 임의로 투자하다 1천만원의 손실을 입힌 최씨가 지난 3일 증권감독원과 회사 감사실에 투서하자 월급차압에 이은 또 다른 인사조치를 우려했다.
그 결과 방화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증권사 직원의 약정고경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올 1·4분기중 증권감독원 민원실에 접수된 매매거래 관련 민원 34건중 일임·임의매매와 관련된 것이 3분의 2가 넘을 정도로 이 문제는 고질적이다. 하지만 주가가 오를때는 별다른 문제가 안됐다가 주가가 폭락할 때나 증권사 직원이 잘못 판단해 손실이 생겼을 경우에만 문제가 되기 때문에 평소엔 별로 노출되지 않는다.
주식투자로 모은 재산을 모두 주식투자로 날리고 고객들로부터 손해배상 압력을 받아오던 김씨는 결국 6일 밤 신나 10ℓ를 최씨 집에 들고가 불을 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식투자로 시달린 증권사 영업사원의 일생을 마감했다.<김동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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