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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쉬운 대선예비후보 등록 "占집 홍보 덕볼것"

중앙일보

입력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처음 도입된 예비후보 등록제는 누구나 대통령을 꿈꿀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지만 100여명이 넘는 후보 난립 현상을 몰고왔다. 4월 23일부터 시작한 예비후보 등록의 마감일은 11월 24일로 예비후보 등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예비후보 등록자는 농부ㆍ종교인ㆍ역술인ㆍ무직자ㆍ소설가 등 정치 경력이 전무한 등록자가 적지 않다. 고졸ㆍ중졸ㆍ초졸ㆍ무학에 해당하는 예비후보는 25%,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무소속이 70% 가량이다. 예비후보 등록자가 포화 상태라 각자의 공약에 대해 유권자의 접근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등록 요건 너무 쉬워= 공직선거법상 예비 후보자 등록 요건이 너무 쉬운 것도 문제다. 국내 5년 이상 거주한 40세 이상 국민이면 누구나 기탁금 없이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이 가능하다. 또 주민등록초본과 호적초본 1통씩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하면 된다. 이렇다 보니 “가문의 영광을 위해” “이름 한번 알리려고” “대통령 후보였다는 간판 때문에” 등 한번 출마해 보자는 식의 ‘묻지마’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결과 피선거권 결격으로 이미 2명이 등록 무효가 됐고 예비후보 등록자 중 44명(40%)이 선거사무소 소재지도 밝히지 않았다. 일부는 선거사무소를 따로 차리지 않고 자택 주소를 게재했다. 경력란과 선거사무소장 기입란도 텅 비어 있다. 그러나 예비후보 등록을 제지하는 가동 체계가 미흡하다. 선관위 한 관계자는 “등록 신청서에 학력이나 경력란이 빈칸이면 채우지 않고 그대로 사이트에 올린다”며 “어차피 후보자 등록 때 다 걸러진다”며 안일한 태도를 보였다.

◇내 홍보 위해= 예비후보 등록제를 시도한 국가 중 이집트는 2005년 대선 당시 예비후보 등록자가 100여명에 달했다. 그러나 후보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아 실제 출마 가능자는 20명 안팎이었다. 우리나라도 이같은 현상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선거일 전 24일인 후보자 등록기간에 기탁금 5억 원과 후보자 등록 신청서류 등을 갖춰 새로 등록해야 대선 출마가 가능하다.

신청서류는 차치하더라도 무소속 기반에 지지 세력 없이 5억원의 자금을 동원하기는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이유를 들어 80% 정도의 예비후보자가 중도에 포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컨설턴트는 “역술인은 자신의 점집을 홍보하기 위해, 농부는 이장 선거를 위해, 회사 대표는 자신의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간판을 따려는 것”이라며 “예비후보 등록자 제도와 후보 등록자 제도가 분리돼 있지만 일반인들은 이를 구분하기 힘들다. 이를 악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주의 초석으로= 이와는 반대로 대선 첫 시행인 만큼 시행착오를 겪은 후 민주주의의 초석을 닦는데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세종대 이남영(정치학) 교수는 “새 제도 시행 후 예비후보를 관리하는데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이 들고 후보 난립으로 인해 공약의 접근성도 떨어지지만 이는 제도 정착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본래의 목적대로 정치 신인을 발탁하는 통로를 만들고 국민도 다양한 후보를 저울질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강대 이현우(정치외교학) 교수는 “후보자 난립으로 좋은 뜻으로 세운 법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며 “등록자의 자격 요건을 후보등록제보다는 낮은 수준으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예비 후보자 등록 때 일정 수의 선거권자로부터 추천을 받도록 하거나 필요하다면 많지 않은 일정액의 기탁금을 납부하게 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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