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랑>광고에 밀려나는 문학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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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문화.예술계인사들이 삶의 길목에서 겪고 느낀 이야기들을 모아『문화舍廊』이란 이름의 칼럼을 주3회 연재합니다.禹燦濟(문학평론가).鄭玉子(서울대교수).崔旻(미술평론가).尹興吉(소설가).
權澤英(문학평론가).洪池雄(출판인)씨등 6명이 앞 으로 4개월동안 돌아가며 집필하게 됩니다.
[편집자註] 「서정시인마저 황금광으로 나서는」시대가 되었다고투덜거리던 이는 1930년대의 모더니스트 朴泰遠이었다.초기 자본주의의 경험에 누구보다 민감했던 그였다.서정시는 사라지고 소외된 서정시인만 들끓고 있다고 슬퍼했던 朴泰遠의 우울을 지 금여기서 다시 생각해본다.『경제를 살리자는데…』라는 말 앞에서,책광고의 홍수 속에서 속수무책인 요즘 박태원이 다시 청계천변을산책한다면 어떨까.아무래도 불안하다.혹시 심한 발작증세를 일으키지나 않을는지 걱정스럽다.
「책의 해」였던 지난해 이후 책을「팔고 사는」문화는 일정하게성장(?)했다.그러나 책(글)을 「쓰고 읽는」문화는 오히려 퇴행한 게 아닌가싶다.아니「팔고 사는」문화에 의한 「쓰고 읽는」문화의 지배현상이 본격화됐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리라.문학만으로 좁혀 말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문학의 진정성이나 작품성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그보다는 문학상품의 광고성이 전면에 나서 권력을 행사한다.가치가 있다면광고가치,베스트셀러 가치일 뿐이다.저자거리의 수많은 저자.독자들이 광고에 눈멀고 귀먹어 오히려 작품을 외면한 다.요컨대「서정시인마저 광고광으로 나서는」시대가 된 것이다.
서정 본래의 목소리거나 전위적 문학실험 대신 전술적 광고 효과만을 추구한다.수상한 시절이다.
갈수록 거대화돼가는 출판시장의 논리 앞에서 본격문학의 운명은어떨 것인가.
최근 朴景利.崔仁勳.朴婉緖.李淸俊씨등 중견 작가들을 비롯한 몇몇 신예작가들의 작품이 본격문학의 새로운 모색과 활로를 생각케 한다.이런 흐름이 난세를 버텨낼 수 있기를 기대하는 바 크지만 이 또한 광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니 어쩌랴.
그러나 이 경우 문학성이 곧 광고성으로 전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른다.
본격문학의 흐름.진로와 더불어 문학소비사회의 새로운 척도를 생각한다.문학성.광고성이 등가를 이루고 있는가,문학성 우위인가,천적인 광고성 우위인가를 따져볼 일이다.
경제는 살려야 한다.그러나 마음의 경제를 먼저 살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문학산업을 살리되 문학성을 먼저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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