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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가 좋다] 부산 실버축구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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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님! 이짜로(이쪽으로) -." "니가 거서(거기서) 공을 쌔리(세게) 날렸어야재-."

26일 아침 부산 영도의 부산남고 운동장이 흙먼지로 요란하다. 태종대의 찬 바닷바람도 잠시 주춤했다.

'부산 실버축구단'이 '영도 실버축구단'을 찾아가 치른 원정경기. 날렵한 드리블과 과감한 태클, 강슛과 슬라이딩 장면을 보고 있자니 믿어지지 않는다. 이게 정말 60대 이상 노인들의 시합인가?

*** 드리블.태클.강슛 … 노인 맞아?

1-0으로 리드하던 부산실버팀 성원환(67)선수가 날린 20m 중거리슛이 네트에 꽂혔다. 그는 동아고 교감선생님 출신이다. 응원하던 20여명의 동료는 환호하며 난리가 났다. 부산팀이 2-0으로 이겼다.

부산 실버축구단의 시작은 1994년 전국노장축구대회 대표로 참가했던 부산 노년축구동호회다.

"첫해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했어. 그냥 흩어질 게 아니라 친목도 다지고 인생의 활력도 같이 찾자고 일주일에 세 번씩 부경대 운동장에서 모이게 된 거지."(단장 심재덕.70)

제지회사 회장인 심단장은 42세 때 선조 묘소에 제사를 가다가 졸도한 게 축구를 시작한 계기다. 조기축구를 하는 주변 사람들이 "함께 건강하게 살자"며 축구를 권했다. 축구를 시작한 지 반년 만에 그는 체중을 75㎏에서 70㎏으로 줄여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회원 67명의 전직은 교사.목사.자영업체 사장.공무원 등 다양하다. 젊은 시절 축구선수를 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뛰고 즐기면서 체력과 기술을 쌓았다.

10여 팀이 출전하는 60대 이상 전국축구연합회 회장기대회, 문화관광부장관기 대회, 전국한마당축전 등에서 두루 우승했다. 96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실버대회에 초청받아 일본 팀들을 상대로 5전 전승을 거둔 건 큰 자랑이다. 같은 해 중국 연변에서 40~50대 동포들과도 친선경기를 해 이겼다.

*** 10년째 매주 세차례 모여 운동

"지난해 울산 30대 주부축구단과도 두 번 붙었는데 다 이겼재." 10년째 공격수로 뛰고 있는 목사 출신 정병찬(70)씨는 50대 들어 축구를 시작한 경우다. 간에 이상이 생겨 쉬 피로하고 누워 있는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박력 넘치는 생활의 연속이라고 한다.

"한달에 1만원씩 회비를 내고 30명 이상이 모여 팀을 나눠 두 시간 정도 뛰고, 이긴 팀이 아침을 내지요. 승자가 아량을 베푸는 게 노년의 지혜인기라." (총무 박덕광.65)

이들은 매주 세 번 만나 운동장을 달린다. 두어달에 한번꼴로 다른 팀과 시합도 한다.

이런 게 쌓이면서 뭉쳐진 동지애도 이들의 재산이다. 김해나 밀양으로 멀리 이사간 뒤에도 "몸도 근질거리고 동지들도 보고 싶어서" 일주일에 한 번 공을 차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올 첫 대회인 전국한마당축전(4월 광주)을 고대하고 있다. 이들에게 '나이는 숫자'일 뿐이고, 이들의 건강한 축구인생에 황혼은 보이지 않는다.

부산=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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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26일 부산시 영도구 남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부산실버축구단과 영도구 실버축구단원들이 친선경기에 앞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앞줄 노란 유니폼은 68세 이상 '골드 회원'들.[부산=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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