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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교육계 흔든 '강남 리포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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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 24일 34년 동안의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신입생의 사회적 성격과 교육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의 발표는 사회적 파장이 적지 않았다. 학력세습이나 저소득층의 배제 현상이 발견됐다고 보도되는가 하면, 이것이 평준화정책의 실패 증거로 보도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대학교육이 교육과열, 사교육의 번창, 교육이민과 기러기 아빠, 심지어 부동산투기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이자 결과로서 지적된 지 오래지만 어디에도 그에 대한 믿을 만한 경험적 자료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대학교육 문제는 사회적으로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신뢰할 만한 자료축적이나 분석이 거의 없었다. 특히 대학교육은 장기적으로 그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더욱더 단편적인 연구로서는 분석될 수 없다. 경험적 자료축적과 과학적 분석이 없어 대학교육 문제는 줄곧 교육계 개개인의 주관적 판단이나 믿음을 기반으로 무책임한 주장을 하거나 소모적 논쟁으로 치닫곤 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자료의 체계적인 수집과 공개가 필수적이다. 특히 오늘날 대학교육은 노동시장, 교육문화, 21세기로의 사회변동 등 사회환경과 다양한 연관 속에 있다. 그러한 점에서 이번 연구는 대학교육의 사회경제적 여건에 대한 사회과학적인 분석으로서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 가장 주목할 대목은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입학생들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지속적으로 높아졌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 대학입시는 지난 30년 동안 더 많은 계층에서 골고루 들어와야 한다는 취지 아래에서 다양한 변화를 해 왔다.

그러나 서울대의 경우 지난 34년 자료분석을 통해 보았을 때 그러한 소위 평준화정책은 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날로 구조화하고 있는 사회의 불평등을 교육문제, 특히 입시제도의 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은 이미 대학교육의 사회경제적 여건으로 실효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과연 대학 입학제도의 변화를 통해 사회불평등의 고착화를 치유할 수 있는가. 교육과열이나 사교육의 팽창, 교육이민이라는 우리 사회현상은 계층상승이나 계층세습의 전이현상이며 그 자체가 대학입시제도나 대학교육을 넘어선 지 오래다.

진정으로 그러한 사회불평등의 구조화 현상을 해결하려 한다면, 입시제도 개편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과잉기대를 접고 누진세.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경제정책이나 공적 부조.연금 등 사회복지정책과 함께 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한 결자해지 속에서만 대학교육 문제는 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그렇지만 21세기의 문턱에 선 우리 대학교육이 어떻게 변해야 하느냐는 본질적 물음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미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공교육 붕괴는 지적된 지 오래다. 대학교육도 21세기 우리의 삶을 책임질 젊은이의 양성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도 거의 없는 것 같다.

지식의 생명 주기가 5년을 넘지 않는다. 특히 다양한 지식분야의 퓨전 현상이 늘어나는 지식정보사회에서, 그리고 날로 경제적.사회적으로 경쟁 속에 노출되고 있는 범세계화 사회에서 그 주기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번 연구는 평준화를 포함한 교육정책이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런 점에서 교육개혁은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라 교육 그 자체의 논리에 의해 추진돼야 한다. 평준화의 논의도 존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교육욕구에 상응한 다양한 특성화 학교나 저소득층도 들어갈 수 있는 값싼 우수학교를 어떻게 많이 만들어 갈 것인가로 모아져야 한다.

대학입시도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대한 지역할당제 등 보완정책을 추진하면서 21세기 잠재력 있는 인재를 선발해 교육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대학도 자신의 다양한 기준에 따라 책임있게 뽑아 가르치고 그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개혁되기를 기대해본다.

서이종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