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경질로 되레 꼬여가는 정국/“돌파 「카드」없나” 머리싸맨 여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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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개각약효엔 한계… 포용정치·대국민선언 저울질
정국이 풀리기는 커녕 자꾸 꼬여만 가는 형국이라 정부·여당의 고뇌가 깊어지고 있다.
특히 전격적으로 단행한 이회창 전 총리경질에 예상보다 훨씬 강한 동정과 비판여론이 조성되고 있어 여간 곤혹스러운게 아니다.
이번 총리인사가 국정운용의 불안전성을 제기하고 감정의 정치에 의존하는 인상을 줌으로써 김영삼대통령에게 전례없는 정치적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이 전 총리의 퇴진에 국민들은 대체로 『너무 심하다』는 반응이며,김 대통령을 향해 신권위주의 또는 독주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야당은 개혁의 퇴색과 통치행태 전반에 걸친 「인치논쟁」을 다시 일으켜 여권을 압박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영덕 총리내정자로는 우루과이라운드·북한핵·조계사 사태·상무대조사 등 쌓여있는 현안들을 해소하는 국면전환의 카드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 청와대나 여권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과거 총리의 교체가 국정침체 분위기 쇄신의 상징적 효과를 거둔 것과는 딴판이다.
어쩌면 문민정권 출범후 가장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그동안 김 대통령은 두가지 고민에 처해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권력관리」의 혼선을 정비하는 것이었다.
이 전 총리가 대통령을 대신해 국정의 어두운 부분의 짐을 져주는 완충역할을 하기보다 자신의 위상확보에 신경을 쓴다는 불만이 컸다.
또 이 전 총리가 총리의 법적권한을 챙김으로써 빚어졌던 통치의 이원화 문제도 심각했다.
다른 하나는 한달이상 표류상태를 보이고 있는 국정전반의 난맥을 어떻게 돌파하느냐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두가지 사안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하고 일괄 해결하기 위해 첫번째 선택한 것이 이 전 총리를 퇴진시키는 것이었다.
불협화음을 보인 내각의 팀정비를 통해 국정난맥을 정돈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총리교체는 문제를 오히려 꼬이게 만들고 말았다.
국회인준과정에서 여러가지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고,정국이 간단히 혼미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듯 보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후속개각의 폭이 단순한 보각 수준을 넘어 경제쪽까지 의외로 커지는게 아니냐는 추측을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개각의 폭과 질이 어떤 수준이라도 「이회창이라는 인물」이 남긴 소신과 강직의 강렬한 이미지를 덮을 수 없을 것이란게 지배적 관측이다.
국정정체의 돌파용으로 개각은 이미 신선미를 상실했고 한계를 노출하고 있는 셈이며,그만큼 김 대통령이 취할 카드의 선택폭이 좁다 하겠다.
그런점에서 이번에는 한 두명을 보각하는 선에서 끝난다는 논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여권 일각에서는 개각이라는 수단외에 국면을 전환시킬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강력히 개진되고,또 전망하기도 한다.
국정장악력의 강화를 위한 공직사회의 기강확립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애기다.
정계 일각에서는 국민 모두가 국제화와 개혁에 동참해 달라는 대국민선언이 나올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와관련해 민심수습을 위한 대화합조치·포용의 정치에 대한 전망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이 전 총리의 해임이 내각의 일하는 분위기 확립을 위한 단순한 인사임을 국민들에게 설득하고,신명나는 사회분위기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지금이 적기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런 대국민선언은 과거정권이 위기상황때 사용했던 것으로 새로운 맛이 적고,화합조치는 개혁후퇴로 보는 시각 때문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물론 청와대와 민자당 일각에서는 총리퇴진의 파장이 몰고온 충격파가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해소될 것이라며 별도의 조치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렇지만 어떤 형태로든 김 대통령의 후속조치가 나올 가능성이 높고 특히 김 대통령 특유의 의표를 찌르는 카드가 나올지도 관심이다.
그러나 그런 충격적 카드는 국정운용방식과 관련한 비판여론도 있어 고심이다. 그만큼 현재 시련은 간단치 않은 것이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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