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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는 때로 ‘멈춤’에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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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 10면

1. 김미지(오른쪽)씨가 지진 당시 팔이 부러진 할머니에게 석고붕대를 감아 주고 있는 의사 유욱진씨를 돕고 있다. 2. 임시 거처 앞에서 산안드레스 마을의 한 가족이 선 채로 식사를 하고 있다. 3. 규모 7.9의 지진은 음식을 조리할 공간마저 앗아갔다. 거리에서 한 가족이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

참혹한 폐허였다. 성한 담장이나 지붕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늘은 온통 모래먼지로 노랗게 뒤덮여 있었다. 눈을 뜨지 못할 정도였다. 마을 주민들은 맨땅에 거적과 비닐 등으로 얼기설기 엮은 설치물로 겨우 비바람을 가린 채 생활하고 있었다. 길바닥에 솥단지를 걸고 음식을 조리하는 모습도 보였다. 비쩍 마른 아이들은 땟물이 쫄쫄 흐르는 꼬질꼬질한 얼굴을 한 채 맨발로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페루 남부 이카주(州) 피스코시 산안드레스 마을의 모습이었다. 같은 달 15일 발생한 지진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본 지역 중 하나였다.

박상주가 만난 사람-페루에서 의료봉사하는 김미지(27)씨

마을회관으로 보이는 한 건물 앞. 그나마 온전한 모습을 유지한 그 집 앞에 마을 주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연방 기침을 콜록거리는 어린 소녀, 팔이 부러진 할머니, 다리를 절룩거리는 아저씨…. 건물 벽엔 스페인어로 ‘Equipo Medico Voluntario De La Repubulica De Corea, KOICA(대한민국 의료봉사단, 한국국제협력단)’이라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8월 23일부터 28일까지 의료봉사를 한다는 고지사항도 적혀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섰더니 한국의료진 17명이 인디오 주민들을 진료하고 있었다.
 
받은 복을 나누는 봉사
저토록 참한 아가씨가 왜 이런 험지까지 와서 저런 생고생을 하고 있을까. 쇼트 컷 헤어스타일에 서글서글한 눈매, 맑은 피부, 흰색의 간호사 가운이 이런 그의 모습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의사들과 함께 밀려드는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김미지(金美智). 올해 우리 나이로 스물일곱. 꽃다운 나이에 그는 지구 반대편 페루의 지진 현장에서 고된 의료봉사를 하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KOICA 봉사단원으로 페루에 왔다고 했다. 원래 김씨가 배속된 봉사 무대는 페루 북부 피우라주. 그곳에 있는 산타로사 호스피털(제5 한국 페루병원)에서 당뇨환자 치료, 기생충 퇴치 캠페인 등 봉사활동을 벌였단다. 그러던 중 지진피해 주민 구호를 위한 KOICA 긴급 의료봉사단이 구성되면서 합류한 것이다.

사람들은 왜 봉사를 하는 걸까. 아프리카 박애사업에 평생을 바친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의 어록을 들춰 보자. 그는 “나는 오직 한 가지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진실로 행복한 사람은 섬기는 법을 갈구하고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라고 했다.
김씨에게 봉사활동에 나선 이유를 물었다.
“스스로 복을 많이 받은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뜻한 부모님과 형제들 사랑 속에 자랐습니다. 굶어본 기억이 없고, 잠잘 곳을 걱정한 적도 없어요. 하루하루 즐겁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 복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나눠주고 싶었어요.”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자랐기에 스스로 복을 많이 타고난 사람이라고 할까. 그가 들려준 긴 이야기를 짧게 줄여 보자.
“강원도 탄광촌인 삼척 도계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태권도장을 운영했어요. 인근의 삼척여고로 진학했지만 통학 여건상 자취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춘천에 있는 강원대 간호학과 진학, 졸업 후 서울대병원 취업 등으로 이어지면서 일찌감치 부모 품을 떠났지요. 고등학교 때는 청년적십자 활동단체인 RCY를 통한 양로원 봉사, 대학시절엔 간호학과 동아리에서 꽃동네 봉사 등을 꾸준히 했습니다.”
 
젊음·가난·자유가 떠남의 3박자
누구든 한번쯤은 답답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꾼다. 그러나 안정된 삶의 궤적을 벗어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서울대병원처럼 좋은 직장을 가진 사람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미지씨는 서울대병원에 취업한 지 2년3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휴직을 했다. 봉사활동을 떠나기 위해서였다. 직장에서의 성취욕구, 일을 배우는 재미,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정적인 돈벌이…. 미지씨는 이런 것들을 어떻게 쉽사리 떨칠 수 있었을까.
“더 늦어지면 영영 못 떠날 것 같은 두려움이 일었습니다. 자꾸 돈을 모으고, 직장에서 자리도 잡히고, 결혼해 안정된 가정을 갖게 되면 발목이 잡힐 것 같았어요. 젊고, 가진 것은 없고, 그래서 자유로운 지금이 평소 하고 싶던 봉사활동을 떠날 시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멈춤’. 미지씨는 멈춤을 삶의 지혜라고 했다. 스물일곱 살 나이의 젊은이치고는 아주 어른스러운 말이었다.
“우린 모두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립니다. 잠깐 멈추면 모든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거지요. 한번쯤은 멈춰 서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속적 셈법으로는 다소간 잃는 게 있겠지요. 그렇지만 그래야 비로소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잠깐씩 쉬어 가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는 지금 잠깐 쉬는 중이다. 고된 봉사활동이 그에겐 삶의 휴식인 것이다.
“비록 짧은 직장생활이었지만 정말 바쁘게 살았어요. 간호사들의 3교대 근무 특성 때문에 친구들과의 만남도 계속 엇갈리기만 했습니다. 학원을 다니고 싶어도 일정한 시간에 나갈 수 없는 직장의 특성 때문에 포기해야 했어요. 하긴 하루 10시간 이상의 강도 높은 근무 이후엔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피곤하기도 했고요.”
그가 처음 봉사활동을 떠났을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KOICA 봉사단에 합류한 직후 경기도 이천 훈련소에서 한 달간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때 직장생활 2년3개월 동안 웃었던 것보다 더 많이 웃었어요. 훈련이라는 게 원래 지겨운 건데 지겹기는커녕 천국 같았어요. 봉사에 대한 열망을 지닌 동질 그룹이 한자리에 모이다 보니 자연히 통하는 게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유가 있었지요.”
속상한 일은 없었는지 물었다.
“피우라에 온 뒤 처음 이곳 미용실에 갔을 때였어요. 문구용 가위를 가지고 그냥 썩둑썩둑 자르더군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는 경악을 했습니다. 한동안 ‘호섭이 머리’를 하고 다녀야 했습니다.”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니 그 역시 외모에 신경을 쓰는 20대다. 호섭이 머리를 한 미지씨의 모습은 어땠을까.

지난달 24일 페루 남부 이카주(州) 피스코시 산안드레스 마을에서 한 소녀가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벽돌더미 앞에서 손톱을 물어뜯으며 카메라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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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주씨는 18년 동안 신문기자로 일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나 얘기 나누는 걸 즐기는 언론인으로 지금은 세계를 방랑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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