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먼 길을 떠나기 전 해야할 중요한 일은 말굽 확인 등 말을 꼼꼼히 점검하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조영석 그림<말 징박기>.말>
최기숙 외 지음, 글항아리
366쪽, 1만6000원
1872년 5월30일 밤 평안도 후창군의 압록강변. 조선의 장교 세 사람이 떨리는 가슴을 안고 몰래 강을 건넜다. 수시로 건너와 무단 벌목을 일삼았던 무장 청인들이 사는 압록강 이북을 정탐해 변방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들의 외지 탐사는 스파이극에서 금세 ‘로드 무비’로 흐른다. 길지(吉地)라는 말에 현혹돼 국경을 넘어 고단한 ‘이민 생활’을 하는 조선 동포를 만나 위로하기도 한다. 이주한 지 오래돼 복장과 풍속이 모두 오랑캐 식으로 변한 조선인을 보고 혀를 차기도 한다. 무산부사 마행일이 가혹하게 조세를 쥐어짜는 바람에 주민들이 집단 월경해 만주에 사는 걸 보고 안타까워 한다. 하지만, 관청 기록을 보면 마행일은 대원군의 심복으로 못 받았던 세금을 거둬 재정을 확보한 인물로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같은 사안을 놓고도 조정과 백성이 보는 눈은 왜 이리도 다른지.
조선시대 기록인 『강북일기』를 바탕으로 정리한 조선조의 한 풍경이다. 그 누구도 그들보다 먼저 간 이가 없기에 다소 어수룩하기도 하고, 겁도 많았지만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외지를 누비는 조선 무사들의 호흡이 느껴지고, 당시의 풍경이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져 자못 흥미롭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길’을 화두로 삼아 조선시대 우리네 조상의 삶을 생동감 넘치게 재구성하고 있다. 당시 풍경을 바탕으로 한국·한국인의 근원을 살펴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것도 인간의 살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생활의 한복판에서 말이다. 10명의 한국학 관련 교수가 각각 첩보·장례·상소·유배·휴가·장사 등을 위래 떠난 길의 기록을 나눠 맡았다.
조선시대에 먼 길을 떠나기 전 해야할 중요한 일은 말굽 확인 등 말을 꼼꼼히 점검하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조영석 그림<말 징박기>.말>
채인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