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 결의안 제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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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눈감기 전에 40년동안 응어리진 恨을 풀어주십시오.몇년 살지도 못할 우리가 보상을 바라겠습니까,복수를 생각하겠습니까.역사의 뒤켠에서 희생당한 부모형제를 이대로 둘수는 없습니다.』 경북도의회 柳景晫의원(문경군)등 도의원 24명이 지난 7일 문경 양민학살사건의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표하면서 재조명작업이 활발한 문경양민학살사건.
결의안은『지난 49년 문경군산북면 석달마을 주민 86명이 무장군인 1백여명에게 학살당한 양민학살사건이 4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명백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며 역사의 진실을 밝힐 것을촉구하고 있다.
문경 양민 학살 피학살자 유족회(회장 蔡義鎭.56)가 털어놓는 사건의 진상은 이렇다.
1949년12월24일 경북문경군산북면석봉리석달동이라는 조그마한 산골 벽지마을인 蔡씨 집성촌에 무장군인 1백여명이 몰려와 가옥마다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무차별 사살했다.24가구 1백28명의 주민 가운데 86명이 몰살된 이유는「빨갱이 」.
사망자 중에는 여자가 41명,15세미만 어린이가 26명,65세이상 노인 13명이 포함되어 있으며 채 한살도 안된 갓난아기를 포함해 5살미만도 12명이나 됐다.이 사건으로 6가구의 대가 끊겼다.
살아남은 23명의 주민들은 피가 흥건한 빈터에서 시신을 끌어다 인근 야산에 가매장했다.이 지역에선 아직도 어린아이의 유골이 나온다.
『형과 사촌동생(당시 국교2년)의 시신이 몸을 덮는 바람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蔡씨는『당시 申성모 국방장관이 직접 학살현장을 방문,국군의 학살임을 정중히 사과하고 국회에서도 조사활동을 벌였으나 계속 묵살되어왔다』고 주장했다.
蔡씨는『당시 경찰과 군청등에서 현장 사진을 찍고 증언을 청취한 서류를 작성했는데도 얼마뒤 모두 소각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불시에 고아가 됐던 蔡홍빈씨(57)는『전시도 아닌데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사람들이 나중엔 국군에서 빨갱이로 둔갑하더군요』라며『우리 일족들을 상대로 사격연습한 것이나 다름없었어요.살아남은 사람을 대상으로 확인사살까지 했으니까요』라는 말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을 안고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蔡旭鎭씨(66)는『보상도,복수도 다 필요없습니다.그저 당시에 학살에 참여했던 군인(지금은 60대로 추측)들의 양심선언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며 흐느꼈다. 당시 언론에서는「당국이 알고도 묵인」「시체더미 속에서 살아나온 증인들의 절규」등으로 대대적인 보도를 했으나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고 5.16쿠데타 이후에는 오히려 진상규명을 호소하는 유족들이 옥살이를 하는 모순이 계속됐다.
유족들은 88년 유족회를 결성,93년12월 합동위령제를 지내고 각계에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는등 생업까지 제쳐놓고「한풀기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聞慶=金基讚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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