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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 북한 벌목공 동포애로 감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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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입장바꾼 정부/북태도 상관없이 인도적 배려/북 엄포받으며 더이상 양보못해
김영삼대통령이 13일 시베리아 벌목장을 탈출한 러시아내의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인도주의에 입각한 대책」을 천명한 것은 인도주의를 내세운 여론의 반발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중국방문 직후인 4월초 러시아내의 탈출 북한벌목공 문제를 공개리에 거론,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이들을 데려오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중국이 우리가 북한을 흡수통일하지 않는다는 의사와 함께 이를 북한에 전할 것으로 안다』며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에 대한 상당한 의견교환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김 대통령은 이같은 언명에도 불구하고 망명허용 보도가 잇따르자 불가입장을 거듭 천명하면서 이와관련한 특별한 정책변화가 없으며 현 단계에서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재검토를 지시하게 된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여기에는 국내적으로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문제와 망명신청자에 대한 우리 정부로서의 책임론이 반영된 것이다.
또 밖으로는 북한을 고려한 우리 정부의 자제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태도가 계속 변화하지 않고 오히려 『망명을 허용하면 납치로 간주하겠다』고 엄포까지 놓고 있는 상황이 작용했다.
북한이 12일의 범민족대회에서 한국에 대한 적대적 입장을 다시 밝혔다. 이러한 북한을 놓고 우리가 일방적으로 양보만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주돈식 청와대 대변인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우리의 입장이 더이상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정책전환에 따라 러시아내의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구제」방안을 마련중인데 러시아정부와의 협의가 이뤄지면 각자의 희망과 우리 정부의 처리기준에 따라 조치가 있을 예정이다.
정부는 이들의 처리방안으로 ▲한국에 데려오거나 ▲러시아에 정착,현지 한국기업에 취업시키거나 ▲제3국으로 망명을 알선하는 방법 등을 생각하고 있다.
망명자를 일괄하여 받아주는 방식은 국내외 사정으로 어차피 불가능하며 선별처리할 수 밖에 없다는 방향이다.
그러나 이같은 일련의 조치는 러시아내의 북한탈출 노동자에 적용되는 것일뿐 중국내에 숨어있는 북한주민까지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정부는 예견되는 북한의 반발을 고려,반대의사를 분명히하고 있다.
정부는 우선 실태조사조차 안돼있는 상황에서 정확한 사태와 숫자를 파악하기 위해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을 이용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유엔 난민기구는 그동안 터키 쿠르드족 난민 등 수만명의 난민을 다룬 경험이 있으므로 이들에게 벌목공을 포함하여 북한 탈출주민을 우선 맡기자는 구상이다.
유엔 당국은 한국이 경제적인 책임 등을 분담할 경우 중재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통보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중국내의 북한탈출 노동자 등에 대해서는 「난민」의 지위를 부여하여 별도의 시설에 수용,최소한 이들이 북한으로 끌려가 처벌받는 일만은 없도록 보호하면서 시간을 갖고 대처하겠다는 구상이다.
동포보호라는 명분도 축적하면서 당장 한국에 데려오는데 따른 외교상의 시비를 없애고 경제·사회적 부담을 덜겠다는 복안이라고 할 수 있다.<김현일기자>
◎외교적 문제 없나/러 협조 얻어 난민신분 부여/북한에 협조적인 중국동의 얻어내는게 숙제
정부가 북한 탈출 노동자들의 「망명」문제를 허용쪽으로 선회함으로써 그들을 데려오는 절차와 방법,그에 따른 국제관행과 외교문제가 새로운 관심사가 되고 있다.
당장 북한의 시비에 의해 복잡한 외교문제가 생겨날 수 있고 북한은 특히 탈출자가 범죄자나 밀입이국자라고 주장하면서 러시아·중국정부에 송환을 요구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북한과 러시아는 범죄인을 인도하는 사법공조조약을 맺고 있고 북한­중국은 밀입국자 송환협정을 체결해두고 있는 상태다.
현재 탈출 노동자중 한국에 오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대략 1백70명 정도지만 실태파악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한국에 올 수 있는 사람들은 대략 90명쯤으로 추정된다.
외무부 관계자들은 러시아가 이미 『한국정부가 원하면 탈출 노동자들을 인도할 용의가 있다』고 입장을 천명한바 있어 벌목노동자들을 데려오는 방법에는 어떤 경우든,예컨대 국제법상 또는 국제관례상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이 추론하는 인도방법은 대체로 세가지다.
우선 러시아가 북한과 일어날 수 있는 분쟁을 묵살하고 아무런 절차없이 벌목노동자들을 한국정부에 인도하는 방법이다. 북한이 「납치행위」라고 주장해도 러시아정부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큰 의미가 없게 된다.
두번째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을 매개로 탈출 북한인들에게 국제법상 난민지위를 부여하고 비자가 찍힌 여권과 같은 효력을 지니는 여행증명서를 발급함으로써 국제법상 합법적인 절차를 밟는 방법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이 개입할 여지는 근본적으로 없어진다.
특히 탈출자가 난민으로 인정될 때에는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및 의정서」에 따라 제3국으로 피난할 권리를 갖게 되므로 북한의 소환협박도 무력해진다.
세번째 방법은 개별적으로 또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주러시아 한국공관을 찾아오는 탈출 북한인들을 한국정부가 수용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한국공관에 탈출 북한인들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러시아정부에 통보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외교관례상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결국 문제는 러시아와 중국의 태도로 귀착된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우리가 훨씬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게 정부의 판단이다. 러시아가 이제까지 탈출 북한인들을 강제 소환하지 않는 등 인도주의적 자세를 견지해왔고 또 지난 92년 북한출신 모스크바 유학생 김명세씨에 대해서도 북한이 제시한 약 4백페이지 분량의 범죄기록을 인정하지 않고 망명을 허용한 전력이 있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중국은 현재 북한 탈출자들을 밀입국자로 보고 있고 이들이 적발되면 북한으로 송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지금까지 북한에 협조적이었던 태도를 바꾸어 우리 입장에 동조해준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정부로서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강영진기자>
◎국내부담 얼만가/정착비용만 천문학적 숫자/희망자중엔 파렴치범도 많아 사회문제 우려
정부는 탈출 벌목공에 대한 귀순허용 등 대책 검토에 들어갔으나 과연 이들을 국내로 데려올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국내로의 귀순을 허용할 경우 여러가지 무거운 짐을 떠안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벌목공 등의 귀순허용이 안겨줄 막대한 사회·경제적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일단 물꼬가 트일 경우 벌목공뿐 아니라 중국으로 탈출한 북한주민들의 귀순허용 요청이 쇄도하는 등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월남 귀순용사 특별보상법」의 이름과 내용을 「귀순 북한동포보호법」으로 바꾸어 『귀순동포의 정착을 돕고 이들이 자유롭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필요한 보호를 베푼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는 우선 귀순자의 정착여건과 생활유지능력을 고려해 집(단독 귀순자의 경우 대체로 15평 아파트)과 정착금(1인 평균 4천5백만원)을 제공하는데 귀순자가 제공한 정보의 활용가치가 높을 경우 보호금 명목으로 돈을 더 주기도 한다. 또 기술교육 등 자본주의체제에 적용토록 하기 위한 여러가지 교육기회와 일자리도 제공하고 의료보험 혜택도 부여한다.
이러한 혜택을 받고도 귀순자들이 좀처럼 적응하지 못한다는게 정부의 고민이다.
한 당국자는 『과거 귀순동포의 경우 최소한 10년은 넘어야 적응력이 생기는 것 같다』면서 『그동안 이들이 생계를 유지하도록 보호하고 관찰하는데 드는 비용은 엄청나다』고 말한다.
앞으로 「귀순러시」가 발생할 경우 직접적으로 받게 될 재정적 부담은 이제까지의 상황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현재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벌목공과 중국에서 숨어있는 북한 주민 1천여명을 처리한다고만 할 때도 천문학적 경비가 드는 것이다.
또 국민의 세금이 이들의 정착에 과도하게 사용될 경우 국내의 영세민 등에 대한 사회복지차원의 형평성 시비도 발생할 수 있다.
이들을 이렇게 특별대우하지 않고 집단수용해 보호할 경우 「집단수용소 운영」 등의 비난과 북한의 역선전 공세를 맞을 수도 있다.
탈출 벌목공 등 귀순 희망자 가운데는 형사범·파렴치범이 제법 많이 끼어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들을 받아들일 경우 사회문제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점도 가볍게 넘겨서는 안될 대목이라는 지적이다.
이밖에도 정부는 우리 체제와 사회의 안전을 위해 위장귀순 희망자를 엄격히 가려내지 않으면 안되는 부담도 안고 있다.
그러자니 이들을 어디서 어떻게 심사하느냐도 큰 문제인 것이다.
우리 헌법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헌법대로라면 북한지역도 우리 영토에 속하며 북한주민도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러한 법이론과 『북한주민에 대한 인권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당위론적 인권론에 의해 이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으나 정부로서는 현실적인 고민이 큰 것이다.<이상일기자>
◎탈출자 실태/북한판 “엑서더스” 천명 훨씬 넘는다/백70명 러 벌목장 몰래 빠져나가/직접 중국으로 피신자도 수두룩
정부는 러시아 시베리아 북한 벌목장을 탈출한 노동자들이 1백7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중 러시아에 숨어있는 사람은 80∼90명 정도며 나머지는 중국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정부는 중국 연변 등지에는 이들 벌목공외에 북한에서 기아를 못이겨 직접 탈출한 주민이 1천명에 이를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북한 탈출 물결은 마치 동독 붕괴직전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탈출러시를 이루던 것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어 북한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내부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하고 있으며,통일시기가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의외로 빨리 올 수도 있다는 얘기조차 나오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탈출 벌목공 가운데 상당수는 특히 한인이 많이 사는 타슈켄트지역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세울만한 기술이 없는 이들은 주로 농장에서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이곳 농장은 광활한데다 항상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의 신분을 꼼꼼히 따지지 않으므로 숨기에는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그러나 벌목공들은 언제까지나 피신해 있을 수 없고,또 불시에 무슨 일이 닥칠지 몰라 늘 조마조마한 심정이기 때문에 우선 한인이나 러시아 여인과 결혼,신분을 보장받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는게 외무부측의 설명이다. 이들은 한국에의 귀순은 그다음 문제로 보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북한에 있는 가족의 피해를 우려해서다.
러시아의 우리 공관에는 이들로부터 귀순문의가 빗발친다.
이들의 러시아 정착이 여의치 않은데다 이들중 대부분은 정착과정에서 신분이 노출돼 다시 유랑생활을 해야하는 상황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살기 어렵다고 판단한 벌목공들은 우리 동포가 많은 중국으로 숨어드는 것이 정석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러시아 벌목장 탈출자외에도 북한에서 굶주림에 못이겨 중국으로 탈출한 북한주민이 모두 1천명을 웃도는 것으로 외무부와 정보기관에 집계되고 있다.
이들은 숨어살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데 정보기관의 파악으로는 1천명에서 1만명에 이를 수 있다는 판단도 있다.
이들은 중국에서는 주로 연길·대연 등 우리 동포가 밀집한 지역에 은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사냥꾼인 「조교」(북한국적의 중국거류민) 「특무」(북한공작원)들의 수가 많고 추적이 집요한 만큼 한 일자리·은신처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이곳저곳 떠돌면서 연명하고 완전탈출 기회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러시아의 도망자보다 더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일단 붙잡히면 송환돼 처형된다고 봐야 하므로 아예 한국행을 포기하고 몽고·신강지역 등 오지로 피신해버린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북한은 91년 한중 국교수립이후 급격히 불어난 탈출자를 막기 위해 최근 중국 접경지역에 경비병력을 2개여단에서 4개여단으로 늘리고,중국과 국경공안 대표회의를 수시로 개최,협조를 요청하고 있다.<이상일기자>
◎난민지위 받게 여론조성/유엔통한 해결도 바람직(전문가들 의견)
◇백충현 서울대 교수(공법학과·국제법)=정부가 시베리아 탈출 벌목공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밝힌 것은 좋으나 향후 일처리에 있어서는 서두르지 말기를 바란다. 특히 우리 헌법을 내세워 탈북자들이 대한민국 국민임을 강조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
탈북자를 범죄자나 밀입국자로 취급,소환하려는 북한을 물리치고 인도적 차원에서 구제하려면 이들이 난민임을 관철시켜야 하는데 우리 헌법을 미리 내세우면 논리적으로 우리가 궁색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 탈북자들이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유엔인권위·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등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주의적 여론조성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백진현 외교안보연구원 교수(국제법)=탈북자의 귀순을 받아들이려면 러시아·중국과의 협상이 관건이다. 러시아의 경우 탈출 벌목공을 이미 우리측에 인도할 뜻을 밝혀 이들에게 난민지위를 부여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아직도 북한주민의 탈출을 정치적 이유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인데 정부는 중국정부를 설득하는데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끝까지 우리 입장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우리는 국제인권기구 등과 협력,최소한 탈북자들이 북한에 송환되는 불행한 사태가 생기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한편 귀순자를 받아들일 경우 사회적 부담을 무시할 수 없는데 정부는 향후 「귀순러시」 사태 발생을 고려,현재의 귀순자 정착지원제도를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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