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업무?" 공무원도 헷갈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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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해당 공무원도 잘 모를 만큼 복잡한 식품행정의 단면이 드러났다. 아기들이 먹는 분유에서 사카자키균이 검출되면서 농림부.보건복지부.지방자치단체 사이에선 문제 제품의 책임부서와 관할이 어디냐를 넣고 한동안 헷갈렸다. 사카자키균은 생후 4주 이내의 신생아와 면역력이 약한 아기가 먹을 경우 뇌수막염.패혈증을 일으킬 수 있는 유해균이다.

사카자키균을 확인한 것은 지난달 29일 대구의 한 할인점. 대구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매일유업의 '유기농 산양분유 1단계 400g'에서 사카자키균을 발견하고, 이틀 뒤인 31일 해당 제품의 제조공장이 있는 경기도청에 이 내용을 통보했다. 하지만 막상 관할 부처는 농림부였다. 농림부 관계자는 "제품의 관할은 농림부인데 식의약청 공무원이 잘 몰랐는지 경기도청에만 보고를 했다"며 "경기도청을 통해 사카자키균 검출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경기도청은 자신의 관할이 아닌데도 착오로 엉뚱한 지시를 내렸다. 매일유업에 대해 9월 1일자 2개의 일간신문에 이 사실을 공표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최종 관할 부처인 농림부는 그 후에야 사건의 전말을 파악했다. 농림부는 3일에야 '유해 미생물인 사카자키균이 검출돼 경기도청이 해당 제품의 판매금지 및 회수조치를 시행했다'는 내용의 설명자료를 냈다.

이런 난맥상을 놓고 관계 공무원들도 그럴 만하다는 반응이다. 다 같은 조제분유지만 월령이나 장소에 따라 관할 부서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현재 생후 0~6개월 아기가 먹는 조제분유에는 농림부의 '축산물가공처리법'이 적용된다.

생후 7개월 이상의 아기들이 먹는 분유는 복지부의 '식품위생법'에 따른다. 또 이 분유가 할인점에 진열돼 있으면 식의약청이 검사.수거할 수 있다. 하지만 제조공장에 놓여있다면 농림부 관할이라 식의약청 조사 직원이라도 농림부 직원을 동행해야 공장에 들어갈 수 있다.

농림부 측은 "1998년 제정된 축산물가공법에 따라 우유.아이스크림.육류 등에 대한 관할 부처가 둘로 나뉘었다"고 말했다. 이 법에 따르면 백화점 매장에서 판매 중인 쇠고기는 식의약청이 관리하고, 백화점 매장 안쪽 창고에 있는 쇠고기는 농림부가 관할한다.

또 같은 공장이라도 아이스크림 생산라인은 농림부가, 빙과류 생산라인은 복지부가 관할한다.

현재 식품위생과 관련된 부처는 복지부.농림부.국세청.산자부.환경부.해양부 등 8개에 이른다. 관련 법령만 해도 26개나 된다. 지난해 학교 급식 식중독 사태가 발생했을 때 '학교급식 위생이 교육부 담당이냐, 복지부 담당이냐'를 놓고 책임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정부는 '문제의 원인이 학교 밖에 있으면 복지부가, 학교 안에 있으면 교육부가 책임지라'는 쪽으로 교통정리를 했다. 식의약청 안전정책팀 황성휘 서기관은 "식중독의 원인은 노로바이러스라고 밝혀졌지만, 노로바이러스가 어디서 문제가 된 것인지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고 말했다.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식품안전 행정을 일원화하자는 목소리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생산에서 유통 및 판매에 이르는 이력 추적이 원활해야 안전관리도 잘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지난해 10월 식품 관련 행정을 총괄한 식품안전처 설립에 관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아직까지 계류 상태다. 농림부의 한 관계자는 "각 부처의 이해 관계가 충돌하면서 통합이 진전을 못 이루고 있다"고 털어놨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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