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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제1부 불타는 바다 길고 긴 겨울(47) 『길남아.』 명국이가만히 그를 불렀다.
『네.』 길남이 졸린듯한 눈으로 휘돌아간 방파제 저편을 바라본다. 햇살이 따스하다.오늘부터는 채탄 작업이 오후반이었다.이럴 때는 방구석에 쑤셔박혀 잠을 자거나 빨래라도 해야 한다.둘은 숙소 밖으로 나와 목조건물의 담벼락을 등지고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너 혹시 말이다.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다른 생각이라니요?』 『가령,우리 둘이만 가는 게 아니라,다른누굴 데리고 함께 간다든가….』 길남이 명국의 옆모습을 가만히바라보았다.
『성식이 말인가요?』 『녀석.말귀 하나는 빠르구나.』 『아저씨가 요즘 이상스레 절 못 믿는데요,그 얘긴 정말이지 성식이가먼저 한 소리예요.그것 뿐예요.그 얘기라면 저한테 더 꺼내지 마세요.』 녀석이 삐치기는.그렇다.생각을 뒤집어 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누군가를 데리고 가서 나을 수도 있는거고,잘못되는 날이면 공연히 혹 하나 붙였다가 일을 다 그르칠수도 있다.어떻게 판단을 해야 하느냔데,그게 쉽지가 않 다.명국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가겠다는 놈 다 몰아서 그냥 떼지어서 도망들을 쳐 버려? 그래서 반쯤 잡히고 반쯤은 산다면…그것도 못 할 일은 아니지.그런데,이런 일이라는 게 사람 입을 타서는 안 되는 거거든.어디나 뒷구멍에서 일러 바치며 저 하나 살겠다는 놈은 있으니까.튀어보기도 전에 다들 잡혀들어가는 일이생기는 거니까.
『그러자.』 명국이 일어서며 말했다.길남이 그를 올려다본다.
『뭘요?』 『처음 생각했던대로 하자.그냥 너하고 나하고만 나가는 거다.』 길남이 따라 일어섰다.
『이젠 서둘러야 할 때예요.어쩐지 요즘 섬 전체가 좀 잠잠한데,이럴 때가 안성맞춤 아니겠어요.』 명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마디 한마디를 입안에서 씹듯이 그가 말했다,힘주어.
『오냐,그렇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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