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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정국해법/“강수 자제하며 일단 기다린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정면돌파보다 대국민설득에 비중/경기호전·내년 선거 자신감도 한몫
춘래불이춘. 요즘 청와대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국정이 물흐르듯 순탄하게 돌아가지 못하고 계속 꼬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대통령의 일·중 방문으로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것을 기대했는데도 해결은 고사하고 더 뒤엉켜버린 것은 물론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혼선만 빚어냈다. 결국 국민들의 안보불안감을 덜기 위해 통일안보정책 조정회의라는 옥상옥이라도 만들어야 했다.
더욱이 대통령 방일기간중 터져나온 UR 이행계획서 수정파동과 박태권 충남지사 등의 사전선거운동 시비는 농림수산부장관·지사의 경질,이회창총리의 대국민사과 발표를 있게 만들었다. 현 정부가 자랑스럽게 내세워왔던 도덕성과 신뢰를 극도로 훼손시킨채 악화되어 간다는 위기감이 청와대 주변에 깔려있다.
급기야 UR 협정비준 반대를 둘러싼 장외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조계종 폭력사태마저 정치자금 의혹시비의 와중에 있던 상무대 사건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청와대에 불똥이 날아들게 하고 있다.
대통령의 이번 일·중 순방후 전개되는 국내 상황이 지난해말 방미 성과를 한숨에 날려 보내고 김 대통령의 대국민사과 담화까지 낳게 했던 UR 태풍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상황은 방미후인 지난해 말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얽혀있다.
특히 사건마다 청와대를 끌어들이고 있어 국면이 더욱 난처한 것이다.
청와대는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갖가지 궁리를 하고 있지만 아직 묘수는 찾지못한 듯하다.
김 대통령이 궁지에 몰릴 때면 구사해온 특유의 정면돌파 방식의 사용도 어렵게 되어있다.
우선 많은 사태·파동이 어우러져 겨냥할 목표설정이 안된다는 점이다. 또 여러사태가 청와대와 연계된 것으로 비쳐져 섣부른 강수를 쓸 처지가 못되는 것이다. 특히 「경제」를 생각하면 섣부른 강공책을 쓸 수 없다.
김 대통령이 단안을 내릴 경우 이를 뒷받침해야 할 당·관료 등 여권조직이 뒷짐을 지고 지켜보고 있는데에도 청와대의 고민이 있다.
때문에 청와대는 일단 세월을 기다린다는 「전략」으로 대처할 생각인듯 싶다. 청와대가 현 상황에 대해 극도로 불쾌해하면서도 비교적 냉정히 대응하는데는 당장은 어렵지만 중간평가 성격의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한몫한다. 김 대통령의 인기가 출범초 같지는 못하지만 현재의 야당 정도는 능히 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UR비준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다수국민이 이해하리라는 확신과,청와대 관련 정치자금 시비에 대해서는 김 대통령이 일체의 정치자금을 거절한 집권후 처신이 차단막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무역적자를 제외한 경제분야가 호조를 보이는 것도 한 요인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학생들과 어울려 시위나 벌이는 야당은 오래가지 않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것이고 결국 국민들로부터 혼나게 될 것』 『UR비준을 반대하는데 재협상할 재주가 있으면 한번 해보라』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는 UR가 국회에서 비준될 때까지 최대한 자제하면서 각계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대국민설득을 시도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사태를 인식해 청와대는 비교적 온건한 대응책을 세워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문민정부의 체면이 깎인데 대한 김 대통령의 심기가 극도로 불편해 있고 돌발적 사건이 발생할 수 있어 이러한 대응이 지속될지는 미지수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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